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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할복이 투쟁수단일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회에서 할복이라는 국회초유의 극단적 사건이 벌어졌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회의장에서 12일 밤 일어난 신구범 (愼久範) 축협중앙회장의 할복 자해소동은 충격적이자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愼회장은 농민단체 통합이 축협의 입장을 무시한 일방처리로 강행된 데 항의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하나 이유야 어떻든 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견해 차이란 존재하게 마련이며 적법한 절차와 토론을 거쳐 수렴해가는 게 기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공인 (公人) 이 극단적 의사표시 방법을 선택하고 그 사건이 바로 그런 민의 (民意) 수렴의 장 (場) 인 국회에서 벌어졌다는 데 우리로선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축협측은 일방처리라 주장하나 농업협동조합법은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축협의 의견을 상당부분 수렴했다 해서 통과를 여야가 합의한 사항으로 알고 있다.

설사 여야가 합의한 법안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런 극단적 행동으로 그걸 저지하거나 내용을 바꿔보려고 했다면 그건 잘못이다.

할복과 같은 극단행동이 투쟁수단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된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와 일련의 개혁과정의 격동을 치르면서 그렇지않아도 우리 사회는 각 이익집단의 정제되지 않은 집단이기주의로 사회혼란과 사태해결을 어렵게 해왔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공공기관의 장 (長) 까지 자해에 나선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적절치 못함은 물론이다.

만약 법안심의가 이익단체의 이런 극단적 행동으로 중단되고 너도나도 이런 식으로 나선다면 그 혼란을 누가 막겠는가.

또 한 가지 이번 사건으로 우려되는 것은 향후 농.축협의 순조로운 통합작업에도 차질을 빚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축협측은 이미 법안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통합중앙회의 설립준비위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통합추진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도 만만치 않은데 걱정이다.

정부로서도 이런 사건이 나올 정도로 축협측의 반대가 완강했다면 더 조정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가졌어야 옳았다.

한쪽의 완강한 반대를 그대로 두고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밀어붙인 면이 없지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가 아직도 토론과 조정문화가 미숙함을 절실히 느낀다.

힘 있는 쪽이 일방적으로 끌고가서도 안되고 이번과 같은 극단행동으로 의사관철을 강행하려 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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