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백 투더 퓨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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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냉전이 끝난 뒤 유럽의 학자들은 동아시아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아시아 사람들의 귀에는 악담 (惡談) 으로 들리는 전망을 많이 하고 있다.

"유럽의 평화를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주요국가들이 유럽의 현상유지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나라간에 쌓인 감정이 많아 양극체제가 작은 분쟁을 억눌러 주던 냉전시대 이상으로 분쟁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 " (리처드 베츠)

"유럽의 주변지역에서 내전과 민족갈등이 한동안 계속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주요국가들간의 분쟁은 아시아에서 일어날 것이다. 유럽이 5백년 동안 세계의 큰 전쟁을 독점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유럽의 과거가 아시아의 미래가 되려고 한다. " (아론 프리드버그)

"이념의 대결과 강대국간 경쟁의 서슬에 눌려 있던 아시아의 역사적인 요소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아시아는 지금 미래로 되돌아가는 (Back to the future) 위험에 처해 있다. " (제럴드 시걸)

참으로 '재수없는' 입방아들이다.

그런 방정맞은 예언은 그들이 객관적인 사정으로 미뤄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가 유럽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유럽의 불안심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지 10년째가 되는 지금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과 긴장고조, 그리고 북한의 시대역행적 행태를 보면 아시아의 장래에 대한 서양사람들의 비관적인 견해가 반드시 악의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미.중 관계는 20년래 최악의 상태다.

미국 의회에서는 공화당소속 의원들이 대만에 대한 안보지원을 더 늘리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다.

거기에는 대만을 전역미사일방위체제 (TMD)에 참여시키라는 내용까지 들어 있다.

그것은 미국의 국가이익과 아시아 지역안정을 고려하지 않는 중세의 도덕적 십자군 같은 발상이다.

이때다 하고 대만의 리덩후이 (李登輝) 총통이 양국론 (兩國論) 을 제기했다.

중국.대만 관계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 라는 주장이다.

그것은 그동안 대만이 중국과 대화하면서 사실상 '한나라 두 체제' 를 받아들인 정책의 포기를 의미하고, 해석을 더 확대하면 대만의 독립선언과 같은 것이다.

중국이 무력행사를 위협하는 것도 당연하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면 무력으로 그것을 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이 사정거리가 미국의 서해안에까지 미치는 대륙간탄도유도탄 '동풍31' 을 발사해 힘을 과시한 것도 시기적으로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이런 미사일실험은 북한에 '대포동2호' 시험발사의 명분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실험은 일본에는 학수고대하던 명분을 제공한다.

일본은 미국과 전역미사일방위체제 연구에 참여하고 정찰위성과 공중급유기를 도입한다.

이미 4척의 이지스함과 잠수함을 가진 해군력, F - 15와 F - 16을 주축으로 하는 공군력을 갖춘 일본의 군사력은 일본열도를 지키고도 남을 정도로 평가된다.

불행한 것은 중국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악화로 개방.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주룽지 (朱鎔基) 총리의 개혁정책의 발목을 잡고, 일본에서는 자민당.자유당.공명당의 자자공 (自自公) 연합이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를 리드하는 현실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의 아시아.중국.북한정책은 불투명 그 자체다.

그러나 정말 불행한 것은 한국에는 이런 주변의 변화를 걱정하는 정치가 없고 우물 밖을 보는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과 총리, 여당과 야당이 하고한 날 집단이기적 정쟁 (政爭) 과 정략 (政略)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글로벌시대의 정치지도자들 같지 않다.

그들의 근시안적 행태를 보면 동아시아까지는 몰라도 한국은 '과거라는 미래' 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황당한 생각이 든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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