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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하면"자격 안된다"…생색만 낸 생계형 창업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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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실직자 등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서민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생계형 창업 특별보증제' 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정작 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실태 = 보증서의 대부분이 창업한 지 6개월 미만의 사업주에게 대출되는 운영자금이란 게 문제다. 창업에 막 나서려 하는 실직자 등이 점포의 구입.임대 비용으로 대출하는 시설자금은 거의 없다.

신용보증기금 관련자는 "시설자금으로 나간 건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보험회사에 다니다 지난해 7월 실직한 李모 (34.경북 영천시) 씨의 경우 이 두가지 경우에 가로막혀 포기한 경우. 그는 최근 백화점 중간 납품 영업권을 따냈으나 원청업체가 현금 5천만원을 보증금으로 예치할 것을 요구해 '생계형 특별보증' 을 신청하려 했었다.

그러나 중간 납품상에게는 사업자등록증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에 점포를 임대한 뒤 등록증을 발급받으려 했으나 이번에는 건물주가 질권 설정에 응하지 않아 아예 대출을 포기하고 말았다.

◇ 자금 운영원칙 = 새로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안된 사업자가 담보력이 부족해 은행돈을 빌릴 수 없을 경우 이 특별보증을 받을 수 있다. 술집.댄스홀.성인오락실 등 사치.향락업종이 아니면 대상이 된다.

이 보증을 받으려면 ▶사업자등록증 사본 ▶대표자 주민등록등본 ▶부동산등기부등본 (대표자 거주주택과 사업장) ▶소요자금명세서와 자금상환 계획서▶금융기관 거래상황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사업장 구입비용과 임차자금으로는 1억원까지, 운전자금 용도로는 5천만원까지 보증서를 받을 수 있다.

◇ 생색내기가 문제 = '서민을 위한 생계형 창업' 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변사람 이름을 빌려 사업을 하는 알짜부자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6월 중산층대책을 발표하면서 '생계형 창업지원' 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던 재정경제부는 이제 와서 슬그머니 말을 바꾸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생계형 창업지원 사업이 돈 없고 신용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견실한 중산층에 대한 대책" 이라고 말했다.

점포 임대자금.운전자금 중 모자라는 부분을 정부가 신용보증을 통해 도와주는 것이라는 해명이다.

'서민생활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강조하던 발표 때와는 사뭇 다른 얘기다.

결국 복잡한 절차와 검증을 거쳐 나갈 보증지원을 마치 서민을 위한 지원대책인양 '생계형 창업지원'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과대선전했던 정부의 전시행정이 정작 돈이 필요한 서민들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재경부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주택공사에 대해 아파트 상가 등에 대한 질권설정을 해주도록 요청했다.

홍병기.김준현.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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