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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멀어진 美-中 다시 손잡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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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지프 나이]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최대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핵기술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콕스 보고서가 나오고 천안문 사태 10주년까지 겹쳐 미국 내 중국 비판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다행히 내년 3, 4월 최종 주자가 결정되면 이런 움직임은 수그러들 것이다.

중국의 국내정치 상황도 중.미 외교경색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고 주룽지 (朱鎔基) 총리는 경제성이 없는 국영기업을 폐쇄시킴으로써 대량실업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까지 발생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오폭이 아닌 의도적인 폭격이라고 믿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는 클린턴 행정부를 당혹케 하고 있다.

중국대사관 오폭은 미 행정부 내의 정보교류 실패로 인한 사건이었다. 이런 실수는 복잡한 지휘체계를 가진 대규모 기관에서 자주 일어난다.

오폭이 미국의 음모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제는 양국이 마음을 추스르고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생각해야 할 때다. 중국의 군사력은 향후 수십년간 급속히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설사 중국이 전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부상하거나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대국은 되지 않는다 해도 주변국들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할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또한 미국이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군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경제적 성장 못지 않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깨는 새로운 요소로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에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일본.한국과 군사적 동맹을 유지하는 한 지역적 헤게모니를 추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냉전 중 유기적인 사회제도망을 구축하지 못했으며 유럽연합 (EU) 과 나토의 테두리 안에서 손을 잡은 프랑스.독일과 달리 중국.일본은 역사적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역사적 갈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적 (및 핵) 잠재력을 걱정한다. 최근 역사적인 갈등관계를 접고 동반자 관계를 맹세한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은 아직도 일본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

리콴유 (李光耀) 같은 많은 아시아인들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이 정치적 안정을 가져와 아시아 경제기적의 밑받침이 됐다고 믿는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미국이 이 지역에 어떠한 영토적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멀리 떨어진 강대국인데다 군비경쟁을 불필요하게 함으로써 지역안정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이들은 미군의 존재가 동북아 대부분의 국가들에 의해 환영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베이징 (北京)에서도 미군 주둔에 대한 찬반론이 병존하고 있다. 미군의 존재가 일본의 재무장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환영받을 일이지만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어떤 국가도 국경 밖에 군대를 배치시켜선 안된다는 게 중국의 공식입장이지만 미군의 일본 주둔은 '역사적 이유' 를 들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중국은 미.일간의 신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에 대만이 포함돼선 안된다며 우려를 표명했지만 가이드라인은 미국.일본이 고수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변경하진 않았다.

로버트 카간 등의 비평가들은 "지난 80년대 후반 소련의 대내외적인 변화는 부분적으로 '봉쇄를 통한 통합과 변화에 대한 압력' 으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에 의해 가능했고, 이같은 전략이 중국에도 적용돼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같은 접근방식에는 적어도 세가지 결함이 있다. 첫째, 제재와 고립은 경제성장과 개입보다 자유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 둘째, 이는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이 책임있는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감소시킨다.

현재 중국인들 사이에 공산주의를 대체할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 민족주의가 급속히 떠오르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적국으로 간주하면 중국 또한 미국을 적국으로 설정할 것이다.

셋째, 아시아 각국의 최근 동향을 볼 때 미국이 중국을 봉쇄할 동맹국들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의 인접국들은 냉전시절 소련의 인접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중국이 장래에 더욱 위협적이 될 때에만 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 주도의 동맹이 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은 일본.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확고히 하고 중국과 건설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다.

미국.일본.중국.한국은 모두 동북아 지역이 안정을 통해 번영하는 것이 자신들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빅3 중 어느 나라도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하거나 핵무기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한반도 4자회담이 결렬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일본.한국은 중국이 약해지거나 혼란에 빠져 기아.난민.환경문제에 허덕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4단계 전략을 갖고 있다. ①10만의 미군 병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②보강 (補强) 체계로서의 다각적인 기구들을 구성한다. ③냉전 이후 동맹체제를 더욱 굳건히 한다. ④힘의 관점에서 중국의 이해관계가 미국 중심 동맹체제의 이해관계와 상충되지 않도록 한다.

최대 규모의 미군이 주둔해 있는 일본과의 군사동맹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최근 4년간 두 나라의 안보동맹은 더욱 강화됐고 일본 정부의 지원은 미군의 주둔 비용을 본국보다 더 싸게 해주고 있다.

일본과의 군사동맹은 중국이 미국에 대해 '일본카드' 를 내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미군을 몰아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양국 공조를 통해 중국을 제어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이해하는 것은 이 지역에 대한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러나 안정된 균형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책은 튼튼한 기초없이 세워진 집과 같을 것이다.

경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안정은 산소와 같다. 막상 그것을 잃을 때까지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그 영향력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정책기조가 핵기술 절취소동이나 대사관 오폭사건으로 인해 흔들려서는 안된다.

◇ 조지프 나이 (61)

- 미 프린스턴대 최우수졸업.하버드대 박사

- 국무부 차관보, 중앙정보국 국가정보위원장

- 하버드대 케네디 정치대학원장 (국제문제연구소장)

- 저서 : '핵윤리' '국제분쟁 이해' '이끌 수밖에 없는 미국'

<번역.정리 =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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