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민연금, 런던 버킹엄궁 옆 포티 빌딩 매입 계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4호 11면

국민연금이 올 8월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관계자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영국 런던 버킹엄궁 옆 포티 빌딩. 오른쪽 담 안이 버킹엄궁이다. 박정경 통신원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유럽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올 8월 영국 런던 버킹엄궁 옆 포티(4ORTY) 빌딩 지분 50%를 사들이는 계약을 하고 지주와 건물 공유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런던의 대표 금융가인 시티 지역 ‘우드 스트리트 88번지 빌딩(일명 ING 빌딩)’에 대해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국민연금의 유럽 부동산 쇼핑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부터 세계 부동산 시장에서 간접투자로 걸음마 연습을 해온 ‘극동 펀드(Far Eastern fund)’ 국민연금이 직접 유럽 부동산 명품 ‘수집’에 뛰어든 것이다.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宮의 효과’

최근에는 영국 언론이 HSBC 본사 건물을 사들일 투자자로 한국컨소시엄을 지목해 국민연금의 주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무역투자청 특별대표를 맡고 있는 앤드루 왕자도 국민연금 관계자를 버킹엄궁으로 초청해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부동산 매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금융산업 비중이 큰 나라여서 비중 있는 해외 투자자들을 관례적으로 초청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실물 투자는 올 7월 일본 도쿄의 4600억원대 오피스 빌딩을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과 함께 사들인 것이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7%였던 대체 투자 비중을 올해에는 5% 이상으로 늘리고, 내년에는 6.4%로 비중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대체 투자는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적 투자 외의 투자를 일컫는다. 이는 국민연금의 해외 명품 부동산 투자가 단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런던 외에 뉴욕·시드니·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우량 부동산이 최우선 투자 대상이다.

‘트로피애셋’ 노린다
국민연금이 계약을 체결한 포티 빌딩은 흔히 말하는 ‘트로피애셋(trophy asset)급’이다. 영국 왕실의 정궁인 버킹엄궁의 담벼락 옆에 붙어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빛나는 ‘기념비적 부동산’이자, 세계 부자들이 수집하고 싶어 하는 ‘알짜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런던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포티 빌딩의 건물 지분은 클러리컬메디컬과 그로스비너부동산이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땅 주인은 웨스트민스터 공작이다. 국민연금이 사들이기로 한 건물 지분은 클러리컬메디컬의 몫이다.

국민연금이 “투자 검토 중”이라고 한 ING 빌딩(왼쪽)과 한국컨소시엄 매입설이 나도는 HSBC 본사 빌딩.

그로스비너부동산은 클러리컬메디컬 측에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애초 어느 한쪽이 자기 지분을 팔 때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거나 상대방이 먼저 사들일 수 있게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최근 런던 부동산 시장이 반등세를 보임에 따라 국민연금이 사려는 가격에 클러리컬메디컬 지분을 그로스비너가 사들일 가능성도 있다. 이때는 국민연금의 매입이 불발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로스비너 펀드의 포트폴리오가 한쪽으로 쏠리는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10월 중순까지는 가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5번째 대형 펀드로 알려져 있다. 해외 투자 비중이나 부동산 투자 비중이 매우 낮아 앞으로 미국·유럽 등지의 부동산을 대거 사들일 전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의 대체 투자 비중이 30%에 달하고, 이 중 3분의 1이 부동산 실물인 데 비해 국민연금은 아직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런던 현지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미 국민연금이 입질한 빌딩이 여럿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대표적인 게 런던의 대표적인 금융가인 시티지역 ING빌딩. 영국의 부동산 전문지인 ‘프라퍼티 위크’ 등에 따르면 ING부동산운용이 보유한 이 빌딩의 가격은 1억7400만 파운드(약 3290억원)에 달한다. 1999년 신축된 지상 17층 빌딩으로 휴렛팩커드·호주은행 등이 2017~2020년까지 임차해 입주해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은 선진국 투자가 바람직”
국민연금이 HSBC 영국 런던 본사 건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한국의 투자자가 런던 금융지구인 커네리워프에 있는 45층짜리 HSBC 본사 빌딩 매각 협상에서 선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프라퍼티 위크는 “HSBC 빌딩 매입에는 JP모건자산운용이 자문하는 한국컨소시엄과 말레이시아 컨소시엄이 경쟁하고 있다”며 “다음 주 초 둘 중 한 곳을 협상자로 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협상 가격은 8억 파운드(약 1조52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한국컨소시엄에 국민연금이 포함돼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관심은 있으나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한 적이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HSBC 런던 본사 건물은 템스 강 동부에 위치한 신금융지구인 커네리워프에 있다. 2002년 완공된 이 빌딩은 2007년 스페인 부동산개발업체인 메트로바세에 12억 파운드(2조2700억원)에 팔렸으나 메트로바세가 자금난에 처하자 HSBC가 지난해 12월 8억3800만 파운드에 다시 거둬들였다.

국민연금이 런던 다음으로 투자를 적극 검토하는 곳은 뉴욕 맨해튼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는 “파리는 금융위기 이후 하락폭이 크지 않았고 싱가포르는 변동성이 여전히 크다”며 “뉴욕 맨해튼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어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오피스 시장의 자본환원율(cap rate, 임대료/매매가 비율)은 2007년 가을 4.8%까지 하락했으나 올 8월 현재 7.1%로 상승했다. 그만큼 오피스 빌딩 가격이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신종웅 교수(프라임감정평가법인 대표)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연금의 성격상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에, 개발사업보다는 기존 오피스 빌딩 등 수익용 건물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역별로는 올해 런던·마드리드·파리·시드니, 내년에는 프랑크푸르트·홍콩·뉴욕·상하이·싱가포르·도쿄가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