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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79.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제10장 대박

고흥반도 끝자락에 있는 녹도항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자는 제의를 한 사람은 방극섭이었다. 그가 입으로 침을 튀겨 가면서 말한 것처럼 전국 어느 횟집을 찾아가 봐도 녹동항의 횟거리만큼 싸고 신선하면서 맛깔스럽고 푸짐한 덧거리를 내놓는 횟집들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횟거리를 주문하고 술청으로 들어가 앉을라치면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덧거리 횟감을 줄곧 대접하기 때문에 정작 주문해서 장만한 회접시가 나올 때는 벌써 배가 불러 식욕조차 떨어져 버렸다.

뿌연 물보라 속으로 가로 누운 소록도가 빤히 바라보이는 식당 2층에 그들은 자리잡았다. 일행이 재미를 보았다는 꽃게장사는 바로 녹동포구 근해에서 조업하는 통발어선들이 잡아 온 것들이었다.

꽃게들을 싹쓸이로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의 어촌계 사람들과 안면이 돈독했던 방극섭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만한 이문을 남긴 연유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한철규는 장사내막을 꼬치꼬치 파고들지는 않았다.

동중국해나 앙쯔 (楊子) 강 하구에서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만나 선상매매 (船上賣買) 를 하지 않았다면, 꽃게의 매입단가가 그만치 헐값이었을 리가 없다는 짐작 때문이었다.

방극섭도 그것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스스로 저지른 범법행위가 아니었기에 시치미 잡아떼고 있는 것이었다.

안면도의 손씨가 강원도에 갖다 팔았다는 뱀도 모두 중국 어선들과의 선상매매가 횡행하고 있었으므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방극섭은 됨됨이나 원만함이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배 이상의 이문을 남겼던 매수와 매도에서 그는 자기 몫을 탐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이익분배를 일행의 수효에 따라 똑같이 나눠 가진 것이었다.

짧은 기간에 횡재하고 손을 털 수 있었던 것은 한씨네 일행이 있었으므로 가능했었던 역할분담의 절묘함 때문이었다. 형식의 브레이크 댄스가 없었다면 좌판에 장꾼들이 그만큼 모이지 않았을 것이고, 승희의 날렵한 솜씨가 아니었으면 몰려든 장꾼들 태반은 놓쳤을 것이며, 자기가 없었더라면 입항한 꽃게를 통째로 매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셋 중에서 어느 특정한 사람의 힘입은 바는 아니라는 논리였다.

다만 그 시간에 변씨는 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기에 이익배분에서 제외되었다. 그만치 경위 바른 사람이기도 했다. 밥이든 술이든 자기가 먹고 마신 몫은 자기 주머니에서 꺼냈다.

"다락을 뒤져도 쥐뿔도 없는 놈이 분수 넘치는 허장성세로 일관하다가 패가망신 안하는 것 봤어라? 그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 큰돈도 아닌 푼돈 빌리려 아침 저녁으로 이웃집 들쑤시고 찾아 다니느라고 발바닥에 불나는 겨. "

그날 저녁은 한철규가 도맡아 사겠다고 했을 때, 화를 돋우며 방극섭이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차중에서도 사뭇 풀이 죽어 있던 변씨는 별로 말이 없었다.

"형님은 왜 구린입도 안 떼고 가만있소?" "한선생 알다시피 나도 그 동안 누구 못지 않게 떠들었잖어. " "아까도 말했지만, 박봉환이하고 태호를 만나서 정산절차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한씨네 일행들이 겪은 고통이 수월치 않았어. 금액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은혜를 입었지. 그런데도 나한테 돌아올 몫이 있다면 염치 없지만, 형식이 놈의 몫으로 남겼으면 싶구만. 나야 혼자 살아가는 형편인데, 조석 끼니 끓여 먹을 헌 냄비 하나 있으면 됐지, 또 무슨 목돈이 필요할까. "

"보따리장사에 투자해 볼 심산인데 형님 생각은 어떻소? 확신이 있길래 하는 말씀이오. " "확신이 있다면 주저할 것 없지. 그래서 봉환이와도 옛날처럼 조면하고 지내는 사이가 안되고 태호하고도 무간한 사이가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나. 말이 났으니 얘긴데, 장돌뱅이로 애면글면 해 보았자 목구멍에 풀칠밖에 더하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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