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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국내 신약1호 개발 김대기 박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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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내친 김에 두번째 신약을 만들기 위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

'10년 전쟁' 끝에 국내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 를 제조해 한국을 세계 10대 신약 개발국으로 단번에 끌어올린 SK케미칼 김대기 (金大起.43) 박사. 17년 동안 항암제 개발에 매달렸던 그가 이번에는 비아그라에 필적할 만한 '대물' 사냥에 나섰다.

농담삼아 '일라그라' (웨이크업) 로 별명을 붙인 발기부전 치료제 개발이다.

국내 제약사 1백년만에 쾌거를 이뤄낸 그를 SK케미칼 수원공장내 연구소에서 만났다.

[만난사람= 박태균 식품의학전문기자]

- 그동안 축하 많이 받으셨죠.

"무엇보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전화를 해줘 반가웠습니다. 환자들 전화도 많고요. 요즘도 위암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하루 30통 정도 걸려옵니다. 약을 당장 구할 수 없느냐는 게 대부분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그 분들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

- 국내 신약 1호가 언론으로부터 합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주혜란씨와 내각제가 조금 밉게 느껴졌어요 (웃음) .하필 (신약) 발표날 두 사건이 터질 게 뭐란 말입니까. 미리 보도되면 김샐까봐 1개월 전부터 사상 최장의 엠바고 (보도 금지) 를 걸어놓았다는데 결과적으로 택일이 잘못된 셈이죠. "

- 포상이나 승진 약속은 받았나요.

"지금까지 개발 과정에서 두번에 걸쳐 1천만원 가량의 특별격려금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연구원이 성과를 내면 보상해주는 게 관례라 신경 안써요. 올해 상무 진급 대상입니다. "

- 신약개발은 한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게 마련인데….

"사실 그 점이 미안해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합성은 했지만 신약의 성패는 임상시험에 달려있거든요. 9년2개월에 걸친 신약개발 과정에서 제조기간은 3년뿐이고 나머지 6년 이상은 임상시험 기간이었어요. 임상시험을 한 서울대병원 김노경 교수님 등 9개 병원 30여명의 의사분들이 숨은 주역이죠. "

- 개발자 입장에서 선플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우선 물에 잘 녹아 쉽게 배설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한 위암 환자에게 16번 정맥 주사했어도 큰 부작용이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암세포를 잘 죽이는 약이라 하더라도 부작용이 심하면 생명 연장의 의미가 없어져요. 또 항암 효과도 평균 수준은 됩니다. '5 - 플루오로유라실' 이란 항암제와 선플라를 함께 위암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관해율 (寬解率.암이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비율) 이 34%로 기존 복합요법과 비슷한 항암능력을 보였어요. "

- 선플라의 모체인 시스플라틴을 개발한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사의 평가는.

"미국.유럽에는 위암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인지 브리스톨 마이어가 우리 약에 대해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

- 선플라를 모든 암에 사용할 수 있나요.

"위암에 대해서만 시판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위암 환자에게만 투약할 수 있습니다. 고환암.난소암.자궁경부암.폐암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들에게 사용하려면 임상시험을 다시 해야 합니다. "

- 이 약의 시판시기와 가격은.

"9월 중순께 제품이 나오는 대로 대형 약국에 우선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병원에 납품하려면 개별 병원의 약위원회 (DC) 를 통과하고 의료보험 수가를 등재해야 하므로 다소 늦어질 겁니다. 약값은 1회 주사분이 40만원 (환자 본인 부담액 약 10만원) 정도로 예상됩니다. "

- 외제에 비해 싼 편입니까.

"항암제인 탁솔 (3백만원) 이나 옥살리플라틴 (2백만~2백50만원) 보다는 훨씬 낮은 가격입니다. 개발비 등을 감안해 약값을 산정해 보니 1백20만원이 적정 가격이었으나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40만원으로 낮췄어요. "

- 국내 의료계가 새 약을 쓰는 것에 매우 보수적인데 잘 팔리겠습니까.

"의사들은 약을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항암제는 더욱 그렇죠. 그러나 의료계에서 신망높은 김노경 교수께서 임상시험을 했으므로 한번씩은 써볼 겁니다. 시판 후 1년간의 평판이 성패를 가를 겁니다. "

- 만약 시판 후 사망사고라도 나면 문제가 간단치 않을텐데요.

"모든 항암제는 리스크가 있게 마련이죠. 약을 주사한지 2~3일 내에 숨졌다면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 판정 및 보상시비가 생길 수 있겠죠. "

- 신약 후보는 선플라 하나뿐이었나요.

"초기에는 SKI - 2034R란 물질이 더 유력했어요. 하지만 이 물질을 개에 투여했더니 심한 설사를 하고 탈수증세로 모두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SKI - 2053R (선플라) 로 바꿔 같은 동물실험을 했는데 괜찮았습니다. "

- 그 과정에서 동물들이 많이 희생됐겠군요.

"한마리에 1백만원 정도 하는 비글 개 50마리와 쥐 1만여마리가 실험에 사용됐어요. 쥐 가운데 1천여마리는 마리당 5만원하는 '누드 마우스' 였습니다.

사람의 암세포를 넣으면 거부하지 않고 몸 안에서 자라도록 허용하는 특성이 있는 쥐죠. "

- 임상시험 과정에선 어려움이 없었나요.

"위암 환자가 국내에서 매년 1만6천명이나 새로 발생하고 있지만 임상시험 대상 환자를 모집하기가 엄청 어려웠어요. 나이 제한 (21~70세) 이 있는 데다 혼자 화장실을 다닐 정도의 운동기능을 갖추고 간.골수.신장기능이 정상이면서 온 몸에 암이 퍼져 있어야 하는 까다로운 자격요건 때문이죠. 기껏 찾아내도 자신이 모르모트가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대개 기피했어요. "

- 보통 3상까지 하게 돼 있는 임상시험을 2상으로 끝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항암제.에이즈 치료제 등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2상 시험 결과만 제출해도 이상이 없으면 허가해줘요. 미국.유럽에서도 케이스별로 2상 또는 3상 시험을 실시하게 돼 있어요. "

- 임상과정에서 아찔했던 적이 있었다던데.

"97년 2명의 환자가 투약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어요. 한분은 뇌출혈이 사인이어서 괜찮았지만 다른 한분은 패혈증으로 사망해 논란이 많았어요. 6개월간 임상시험 중지명령을 받아 속이 많이 탔습니다. "

- 국내 신약 1호는 선플라가 아니고 유행성 출혈열 예방백신인 한타박스 (96년 개발) 란 주장도 있는데요.

"한마디로 흠집내기죠. 한타박스가 좋은 약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때는 신약관련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화된 것입니다. "

- 또 다른 신약개발에 이미 돌입했다면서요.

"저를 포함해 15명의 연구원이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비아그라를 변형한 신약입니다. 지난 1월 이미 국내특허 출원돼 동물실험이 진행중입니다. 내년에는 외국에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에요. 비아그라의 단점인 심장.눈의 부작용을 줄여주고 흡수와 배설이 빠르다는 것이 이 약의 장점입니다. 비아그라가 24시간이나 약효를 지속시키는데 비해 이 약은 30분~1시간만 약효를 나타냅니다. "

- 실험 결과는 어떻습니까.

"약투여 뒤 토끼의 페니스가 확장됐어요.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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