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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파리산책] 버려지는 '프랑스의 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파리 근교의 리샤르 가족은 바캉스를 앞두고 난제에 봉착했다.

애완견 '야코' 때문이다.

독일산 베르제르종 (양몰이 개의 일종) 인 야코는 키가 거의 1m이고 몸무게가 20㎏이 넘는다.

3주 일정의 미국횡단 자동차 여행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비행기에 함께 태울 수 없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마땅히 맡길만한 곳도 없다.

고민 끝에 파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애완동물 호텔' 에 임시로 투숙시키기로 했다.

한창 성수기인데다 야코의 몸집이 크기 때문에 식사 포함, 하루 숙박료로 1백20프랑 (2만4천원) 은 받아야 하지만 장기 할인요금을 적용해 3주간 2천프랑 (40만원) 만 받겠다는 게 동물호텔 관계자의 설명. 애완견을 기르는 프랑스 사람들이 다 리샤르네 같은 건 아니다.

아무리 동물사랑이 남다르다 하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 애완동물들에게 여름 바캉스철은 '악몽의 계절' 이다.

국가기관인 '애완동물 서비스센터' (SAF)에 따르면 매년 프랑스에서 유기 (遺棄) 되는 애완동물은 개가 10만마리, 고양이가 8만마리에 이른다.

바캉스를 떠나면서 적당한 곳에 버리고 가는 매정한 주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정처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나 고양이는 당국이 4~8일간 보호하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도살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의 '보신탕 문화' 는 프랑스 영화배우 출신 브리지트 바르도가 이끄는 동물보호재단의 고정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얼마전에도 파리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에게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은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인간 존엄성의 문제" 라는 준엄한 성명서를 보내왔다.

과연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매년 이맘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의문이다.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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