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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생 불씨 꺼진다' 일본, 엔고 저지 총력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국제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런던.뉴욕 등에서 기습적인 엔고바람이 일자 일본은행이 시장개입으로 맞서는 등 엔고와 엔저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1일 도쿄 (東京)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개장 초 달러당 1백19.69엔으로 시작한 뒤 엔화에 대한 사자주문과 일본은행의 개입이 얽혀 소폭 등락을 거듭하다 1백18.98엔으로 마감했다.

전날 뉴욕시장에서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18엔대 초반에서 움직이다 일본은행의 위탁을 받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 개입으로 단번에 1백19.75엔까지 밀렸다.

◇ 엔화 왜 오르나 = 한마디로 일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장래의 수익을 예상한 외국자본의 일본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외국인의 일본 내 직접투자는 지난 한해 1조1천억엔을 넘었으며, 올들어서도 통신.자동차.금융 등 주요 업종에서 대규모 인수.합병 (M&A) 이 이뤄져 곧 주식 인수자금이 들어오기로 돼 있다.

이밖에 모건 스탠리.메릴린치.HSBC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펀드 내의 일본주식 편입비율을 2~3%포인트 높였다.

이 때문에 엔화 값과 주가가 동시에 오름세를 타고 있다.

◇ 일본의 개입배경 = 급격한 엔고는 일본의 경기회복에 부담을 준다며 대규모 개입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지난 93~94년에도 설비투자가 늘고 주가가 오르는 등 경기회복 조짐이 보였으나 엔고가 급속히 진행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는 모처럼 경기회복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는 이번만큼은 엔고를 피하기 위해 달러당 1백20엔대에서 선제개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장성 재무관으로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 (黑田東彦) 도 "경기회복 여부가 미묘한 시점에서 엔고는 시기상조" 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도쿄시장에서만 개입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런던.뉴욕 등에서 전방위 개입에 나서고 있다.

또 20~21일부터는 단순히 달러만 사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유로.파운드화 등을 함께 매입, 엔화가 달러뿐 아니라 각국 주요 통화에 대해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 전망 = 외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시장흐름은 이미 엔고로 돌아섰다고 평가하면서도 일본의 강력한 개입으로 엔고의 진행이 다소 늦춰질 수는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반발 때문에 일본의 시장개입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프레드 버그스텐 미 국제경제연구소장은 브리지 통신과의 회견에서 "엔화의 급격한 오름세는 당분간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면서도 "엔고 저지를 위해 미국이 일본에 협력하지는 않을 것이며 일본의 노력도 오래갈 수는 없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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