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워커힐회동 '신당합의설'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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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7일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의 '워커힐 극비 회동' 은 제3세력을 포함한 신 (新) 여당 창당작업의 첫 단추였다.

그러나 金총리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날 대통령으로부터 여러가지 시국구상의 말씀을 들었으나, 이에 대해 합의한 일이 없다" 고 했다. 과연 워커힐 회동에선 어떤 얘기가 오간 걸까. JP가 20일 총리 공관의 심야 총재단회의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이 '통합, 정계개편을 하자' 고 먼저 말을 꺼내길래 나는 '양당 3역회의 등을 통해 당대 당간에 얘기시키자' 고 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그렇게 하자' 고 답하더라" 는 것.

그는 이어 "내가 당대 당 얘기를 한 것은 대통령의 제안에 칼로 무 자르듯 '안된다' 고 할 수 없어, 완곡하게 거절하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고 부연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JP는 자신의 '완곡한 거절' 을 金대통령이 '오해' 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민련 의원들조차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이 단독으로 만나 나눈 대화에 오해가 있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회동 당사자 중 JP의 얘기만 나올 뿐 金대통령은 침묵하고 있어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JP의 해명대로 이런 대화가 오갔다 하더라도, 이는 두 사람이 통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여 관계에서 당직자들간 협상은 양당 수뇌부의 결정을 구체화하는 실무작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회동 다음날인 18일 한화갑 (韓和甲) 사무총장을 불러 DJP회동에서 통합합의가 이뤄졌음을 밝히고, 구체적인 후속작업에 들어갈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련 박태준 총재가 20일 중앙일보 보도 직후 이를 즉각 확인해준 것도 이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언어에 유달리 민감한 金대통령이 JP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회동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金총리가 통합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은 분명한 사실" 이라며 "다만 JP는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통합 합의 사실이 보도되면서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다" 고 설명했다.

내부 분란을 수습하고 충청권 민심을 다독거린 후에 물 위로 나타나야 할 신당 창당 문제가 너무 빨리 불거지는 바람에 JP가 한 발을 뺀 것이란 얘기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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