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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부는 공자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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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의 초등학생들이 28일 공자 사당 앞에서 붓글씨를 익히고 있다. [취푸=장세정 특파원]

28일 오전 공자(孔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쿵먀오(孔廟)의 대성전(大成殿) 앞뜰에서는 공자 탄생 2560주년을 기념하는 석전대제(釋奠大祭)가 엄숙히 거행됐다. 공자의 후손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와 한국·미국·독일 등 전 세계 유학자까지 10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장에는 ‘화충공제 강신수목(和衷共濟 講信修睦)’이란 대형 글귀가 내걸렸다. ‘적절한 조화로 다함께 공존하자. 신뢰를 쌓고, 화목하게 지내자’는 뜻이다. 전날 제25회 공자문화제 개막식장에서는 인민해방군 가극단이 만든 대형 창작 무용극 ‘공자’가 초연됐다. 마지막 무대에 오른 수백 명의 배우들은 “예지용 화위귀(禮之用 和爲貴: 예를 행할 때 조화로움을 귀하게 여긴다)”라는 글귀를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수십 번이나 외쳤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예산 지원을 한 이번 공자 관련 행사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화’였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 철학인 ‘조화(和諧) 사회론’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었다. 중국 정부가 공자와 유가사상을 국가 통치이념에 적극 수용하고 있다. ‘유가(儒家)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공자 탄생 기념 국제 유학 토론회에는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당 서열 4위)이 참석해 “유학을 깊이 연구해 중국의 현실적 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하자”고 강조했다.

이번에 공자 문화제 주최 측으로부터 ‘공자 문화상’을 최초로 수상한 두웨이밍(杜維明) 하버드대 교수는 “종교와 민족·국가를 초월해 문명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가 강조해온 조화 세계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공자 가문 족보인 『공자세가보(孔子世家譜)』를 전면 수정해 발간한 공자의 75대 후손 쿵샹린(孔祥林) 공자연구원 부원장은 “족보 수정 작업을 처음 시작한 1984년에는 정부가 이를 막았지만, 요즘은 공자 할아버지의 사상 전파에 정부가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문화 대혁명(1966∼76) 당시만 해도 공자는 척결 대상이었다. 아직도 공자 사당 한 모퉁이에는 그때 파괴된 비석이 남아 있다. 비석 뒷면에는 홍위병들이 남긴 ‘혁명 무죄’라는 글귀가 생생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건국 60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시장경제 건설의 성과를 자랑하면서 유가사상을 크게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자 사당에서 만난 난징(南京)대 철학과 이수여우(李書有) 교수는 “혁명의 시기에는 공자와 유가를 타도했지만, 건설과 평화의 시기에는 공자와 유가사상이 다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샤오캉(小康)사회와 사회주의 현대화에는 유가사상이 담겨 있다”며 “유가사상이 후 주석의 조화 사회론 등 사회주의의 새로운 내용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승무 국제유학연합회 부이사장(중앙대 명예교수)은 “생활 철학인 유가사상의 긍정적 요소들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푸(산둥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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