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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재도전] 끝. 캉드쉬 IMF총재 E-메일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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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위기발생 2년을 지나며 아시아 각국은 암울했던 두 해를 말끔히 잊은 듯 경제안정과 경기회복 소식에 들떠 있다.

과연 이것으로 위기는 끝인가.

본지는 환란 2년을 넘긴 아시아 각국 경제를 현장 취재한데 이어 아시아 위기의 '관리총책'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를 E - 메일로 연결, 과연 아시아에 탄탄한 장래가 약속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인터뷰= 김정수 전문위원]

- 위기를 맞았던 아시아 국가들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데 위기탈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필리핀.태국에서 개혁과 회복이 빠르고 확연해 경제운영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가 대부분 회복됐다. 통화가치가 올라가고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활력을 되찾으면서 국내외 투자가들도 되찾아오고 있다.

한국에서 회복속도가 특히 빠르다. 다른 나라보다 위기가 심각했던 인도네시아에서도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른 후 회생 조짐이 보인다. 구조조정을 흔들림없이 추진한 것이 이들 위기국의 신뢰회복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시작했지만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장기적 과정이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개혁을 부단히 추진해야 위기를 야기했던 취약점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지속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

- 위기를 통해 아시아국가들과 IMF가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앞으로 또다른 위기가 발생한다면 IMF는 정책을 달리 할 것인가.

"아시아에서 (IMF의) 국가전략이 전반적으로 잘 작동했다. 위기에 빠져 있을 당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오늘날 볼 수 있듯 안정과 성장면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비판을 주의깊게 경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빨리 이들 국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외환위기의 확산과 경기침체의 깊이, 그리고 일본 경기의 급속한 악화 등을 예견하기란 불가능했다. IMF가 이 점을 확인한 때부터 모든 나라가 재정긴축을 풀었다. 위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실업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위기 초기 고금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높은 이자율이 불가피했고 그것이 경제여건을 빨리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이자율이 위기 전보다 더 내려갔고 통화가치 하락추세가 반전됐으며 지난해에 그렇게 우려했던 인플레 조짐은 어떤 나라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아시아 회원국들의 중대 업적이며 IMF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보다 넓게 보면 아시아 경제위기의 또 다른 교훈은 세계금융체제의 개혁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 (新) 국제금융체제' 의 기본틀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당연히 이 분야의 개선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몇년 동안 드러난 모든 취약점들을 해소할 완벽한 체제와 유일한 패러다임을 하룻밤에 창출해 낼 비법은 없다. "

- 아시아 경제가 앞으로도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누구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되찾은 아시아의 잠재력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과거 모델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과거로의 복귀는 핵심이 아니다. '질적 (higher quality) 성장' 을 위한 새로운 모델이 관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아시아의 개혁은 자립적이고 경쟁력 있는 민간부문을 육성하는 게 목표라고 믿는다.

특히 거의 모든 아시아 지역에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중요한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기업.은행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상호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또 많은 기업들이 부채를 줄이고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과 워크아웃 (재무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위기를 부른 핵심요인이었던 금융체제의 개혁도 필요하다.

건전한 규제와 감독체계를 정착시키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이는 부실은행의 폐쇄.구조조정.자본충실화 등 은행체제를 강화하는 과감한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의미한다.

또 한국에서 추진된 것처럼 기존의 금융감독체제를 들여다 보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 지역의 핵심적 현안은 은행.민간부문, 그리고 다른 정부당국으로부터 상당히 독립된 감독기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금융체제의 강화는 개방적 자본시장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 전제다.

자본시장 자유화에는 두가지 포괄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국내 금융체제의 강화와 함께 순차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둘째, 국가들은 장기자본거래, 특히 외국인 직접투자의 자유화가 단기자본의 자유화에 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한국 위기의 핵심적 교훈이다.

사회정의에 대한 고려도 국가정책을 마련하는 데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와 보호가 강화돼야 한다.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에서도 실업은 위험요소다.

IMF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실업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개발조치들이 취해졌다.

나는 이제는 아시아 사람들이 '개방적 경쟁' 을 진보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그런 심각한 경기침체를 직면하고도 대부분의 나라가 보호주의 정책에 저항해 온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과거의 높은 성장은 개방적 무역.투자, 그리고 외환체제를 추진한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민간.공공부문에서 저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높은 저축률은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각국은 강력한 거시경제적 여건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저축을 유도할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해외자본이 더 제한적이고 더 비쌀 것이기 때문에 국내저축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나의 견해가 너무 낙관적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낙관에는 여러가지 분명한 근거가 있다. "

- 한국의 개혁을 평가한다면.

"앞에서 말한 대부분이 한국에 적용된다. 한국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강하다.

1분기 추세로 보면 올해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이 6%대에 이를 것이다.

95~96년 멕시코와 같은 V자 형태의 회복이 점차 확연해진다.

인플레도 낮다. 재벌 구조조정에 따라 실업률이 높아졌지만 이미 정점을 친 것 같다. 그리고 회복 때문에 경상수지흑자가 지난해보다는 줄어들겠지만 해외부문도 건전하다.

성공적인 경제안정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위기 초기에 필요성이 제기됐던 강도높은 구조적 변화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금융부문에서 상당한 구조조정이 있었고 또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지가 확고하지만 지난해 정부가 인수한 대형은행 두곳의 매각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

금융부문이 얼마나 빨리 건전해질지, 한국이 고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새로운 금융여건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지를 결정하는 핵심적 과제는 아직까지는 명암이 교차하는 재벌 구조조정이다.

재벌체제가 한국의 금융체제와 신용배분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대외여건과 한국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은 마련됐다.

이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지금은 외국투자를 유치하고 경쟁력강화에 집중하고 모든 구조개혁을 추진할 때다. 그러면 한국은 실업을 줄이고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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