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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삼성차 처리 끌수록 손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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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삼성자동차 처리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다.

대안과 비판이 무성한 가운데 시간만 자꾸 흘러가니 기아사태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아사태만 하더라도 당시 한국 경제의 분수령을 이룰 정도로 심각한 국민적 관심사였는데도 논의만 무성했지 누구도 명쾌한 해결책을 강구하지는 못했다.

여론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때문에 이번 삼성자동차 문제 만큼은 하루빨리 냉철한 경제논리로 해결책을 찾아 수습해야 한다.

우선 이번 사태에선 무엇보다 삼성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룹 계열사들의 분담지원이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날 뿐더러 주주들에게 부당한 손실을 끼치게 되므로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금융기관에 처리를 맡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건희 (李健熙) 회장 개인이 소유한 삼성생명 주식을 팔아 빚을 갚겠다는 고육책 (苦肉策) 을 낸 모양이다.

그러나 천문학적 액수의 부채를 개인이 지분을 초과하면서까지 부담하는 것은 그 동기야 어찌됐든 시장경제원칙에도,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원칙이나 기본정신은 제쳐두더라도 해결을 어렵게 하는 두 가지 쟁점이 더 있다.

삼성생명 주식의 상장과 채권자들의 책임부담이라는 것이 곧 그것이다.

삼성은 李회장 소유주식이 상장되면 주당 70만원에 2조8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으나 주식상장 자체가 특혜라는 거센 반론에 부닥쳐 있다.

그러나 주식상장이 대주주들에게 자본이득 형태의 특혜를 주는 것이 큰 문제라면, 이는 별도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장에 따른 혜택이 이해관계자들에게 적절히 배분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상장 자체에 대한 반대나 지연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생보사의 상장은 복잡하게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법적 요건이나 사회적 효용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면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국민정서나 상대적 박탈감 등의 차원에서 보면 문제해결이 안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기업의 공개는 경영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여준다.

또 자본의 확충과 경영의 건전성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된 사항이다.

공공성이 높은 금융기관의 경우 소수 수주에 의한 지배형태의 지속보다 기업공개를 통한 소유분산과 공개기업화가 더 바람직하다.

뿐만 아니라 기업공개는 대주주의 횡포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채권자들의 책임문제에 관해서는 삼성자동차에 거액을, 그것도 무담보 신용만으로 대출해준 금융기관들도 일정한 몫의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

금융기관들은 삼성자동차 회사가 아닌 삼성그룹이나 회장 개인의 신용을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고 하겠으나 글로벌 스탠더드 아래선 금융기관도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채권자들도 책임을 모두 삼성에만 미루지 말고 분담한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삼성자동차 문제는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나누는 문제이므로 이런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손해 부담이 어려워 처리를 미루다 보면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런 것이 기아사태가 주는 뼈아픈 교훈이 아닌가 한다.

宋丙洛 서울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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