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마라톤] "참아라, 이봉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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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싸우려는 것은 만용이다. 끝까지 참다가 35㎞ 이후 승부를 건다."

오인환 대표팀 마라톤 감독이 이봉주(삼성전자)의 레이스 전략을 재차 확인했다. 23일(한국시간) 새벽 여자마라톤을 보고나서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직접 여자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니 더위와의 싸움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이날 경기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6시 시작됐지만 기온은 35도나 됐고, 기울어진 태양은 눈높이에서 정면으로 비추며 시야를 방해했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마라톤여제' 래드클리프(영국)는 36㎞ 지점, 북한의 함봉실은 20㎞도 뛰지 못하고 기권하는 등 16명이 중도에 포기했다.

오 감독은 "래드클리프가 초반부터 과감하게 레이스를 주도하다가 탈진하고 말았다. 경기를 포기한 이후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누가 불러도 알아 듣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한동안 돌아다니더라"고 전했다.

결국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레이스 운영의 핵심이다. 오 감독은 "경기 초반에 일부 선수가 치고 나가더라도 우승후보가 아니라면 따라가지 않겠다"는 작전을 밝혔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 터갓(케냐)도 스피드를 믿고 무리하다가는 래드클리프처럼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 감독은 "35㎞쯤 5~6명 정도로 선두그룹이 좁혀질 테고, 이봉주가 여기까지 살아남는다면 충분히 금메달에 도전해 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오 감독은 여자마라톤 우승자인 일본의 노구치가 올해 쿤밍과 생모리츠에서 비슷한 스케줄로 훈련을 한 선수여서 이봉주의 전망도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여자부 23위를 차지한 정윤희(SH공사)를 지도한 최선근 감독도 "코스가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 우승하려면 먼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아테네에서 약 100㎞ 떨어진 시바에서 훈련 중인 이봉주는 23일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이봉주는 경기 이틀 전인 27일 아테네로 입성할 예정이다.

아테네=특별취재팀

*** 아테네 올림픽 특별취재팀
◆스포츠부=허진석 차장.성백유.정영재.김종문 기자
◆사진부=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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