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의약품 공수작전이 남극환자 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목표지점 10㎞ 접근 중,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 11일 밤 남극대륙 상공. 칠흑같은 어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헤치고 비행 중인 미 공군 C - 141 수송기에선 연신 다급한 목소리가 타전됐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비행장을 이륙한 이 수송기의 임무는 미 국립과학재단 '아문젠 - 스콧 남극기지' 에 의약품 공수. 이곳에 근무 중인 40대 여성의 가슴종양 응급치료를 위해 긴급히 출동한 것이다.

불꽃신호가 설치된 기지 주변에 정확하게 투하하지 못하면 의약품과 초음파 스캐너 등 의료장비는 섭씨 영하87도의 혹한과 강풍에 모두 손상되고 마는 고난도 작전이다.

조종사 그레그 파이크 소령은 이를 위해 특수훈련까지 마쳤지만 눈보라 속을 시속 3백20㎞로 비행하는 상황에서 목표물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와 다름 없었다.

"아, 보인다. 목표물 투하 준비. " 수송기가 목표지점 3㎞ 전방에 접근했을 때서야 희미한 불빛이 파이크 소령의 시야에 들어왔다.

수송기는 야간투시경으로 목표를 확인한 뒤 주위를 선회비행했다.

열린 수송기 옆문에서 낙하산을 장착한 운반차량 6대분의 의약품.의료장비가 두차례에 걸쳐 투하됐다.

강풍에 비행기가 흔들릴 경우 자칫 투하작업을 하는 승무원들이 균형을 잃고 날아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의약품은 기지 50m 지점에 정확히 떨어졌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지요원들은 투하물을 기지안으로 재빨리 이동시켰다.

혹한속에 7분만 내버려두면 모두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파이크 소령은 "가시상태가 예상과 현저히 달라 목표지점 상공에 거의 다다라서야 동체 움직임을 투하상태로 조정할 수 있었다" 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같은 공수작전이 감행된 것은 현재 남극이 한겨울이어서 온종일 깜깜한데다 혹한과 강풍으로 기지 근처 비행장 얼음판 위에 항공기가 착륙, 환자를 이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극의 봄이 되는 10월말이 돼야 비행기의 정상착륙이 가능하게 된다.

악성 유방암을 앓고 있는 47세의 이 여성 환자는 남극기지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현지에서 종양을 발견, 기지 의사가 생체조직검사 및 방사선 사진촬영 결과들을 미 본토로 보냈다.

이훈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