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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죄 아닌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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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43년 11월 9일 오후 6시30분 경성(京城)의 부민관(서울시 의회 의사당)에서 '학병 권유를 위한 군인선배 강연회'가 열렸다. 가네야마(金山錫源) 중좌(중령)가 나섰다. 그는 "군문에 진입하라… 황은에 보답하는 길은… 영.미를 때려잡는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가네야마는 44년 대좌(대령)로 진급했다. 그는 사실 조선인 김석원(金錫源)이었다.

해방 뒤 육사 8기로 국군 대령이 됐다 49년 10월 1사단장으로 예편했지만 한국전쟁 때 다시 수도사단장.3사단장이 됐다. 60년 5대 민의원이 됐고 61년엔 사학재단연합회 이사가 됐다. 충무 무공훈장.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그는 78년 사망했다.

구한말 경북 관찰사 장승원(張承遠)의 둘째아들 장직상(張稷相)은 일제 초기 하향.선산 군수를 지냈다. 독립군 군자금 제공을 거부한 아버지가 대한광복회의 손에 살해된 뒤 공직을 떠난 그는 20년 대구에 경일은행을 세웠고 30년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총독부 중추원의 참의가 됐다. 40년 일본 전시 동원체제의 앞잡이였던 국민총력조선연맹의 평의원이 됐다. 하리모토(張元稷相)로 개명한 그는 45년 일제의 전쟁자금을 조달하는 데 몰두했다. 해방 뒤 남선전기 사장으로 대구.경북지역에서 사업을 하다 47년 사망했다. 동생 장택상은 미군정의 수도 경찰청장과 초대 외무장관을 지냈다.'

이상은 '친일파 99인'(돌베개)에 나오는 얘기다. 일제에 야합해 떵떵거리다 해방 뒤 또 출세한 인물에 대한 한심한 기록이다. 99인만 그렇겠나. 돌팔매 맞을 사람은 훨씬 더 있다. 우리 현대사가 이 꼴이니 과거사 정리 요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후손이다. 대부분 고인이 된 선대의 친일 과거가 드러나면 후손들은 죄인시되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건 권위주의 시절 활개치던 연좌제의 망령을 끌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빨갱이 아버지'의 아들인 작가 김성동은 '엄마와 개구리'에서 이렇게 원망했다.

"아버지는 어쩌자고 사람들이 침 뱉는 빨갱이가 되어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풀기 빠진 핫바지처럼 주눅들게 했을까."

친일파의 후손이란 '죄 아닌 죄'를 물어 김성동처럼 피울음을 삼키게 한다면 그건 연좌제를 부활시키고 과거사 정리로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친일 조사대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단지 후손이란 이유'로 사람들이 부당한 시련을 겪지 않게 세심히 배려하길 바란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