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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쁜 시간 따르릉…받고보면 광고 "왕짜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벤처기업 '고암기연' 을 경영하고 있는 김희명 (41) 사장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팩스 벨 소리 때문에 짜증을 참기 어렵다. 들어오는 팩스의 상당수가 업무와는 상관없는 광고팩스이기 때문.

'긴급교환자금' '성남 상대원 SK아파트형 공장 안내' '비즈니스맨을 위한 전세계 초염가 항공권' 등 그 종류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

"이 때문에 드는 잉크 값도 상당합니다. 그러나 더 화가 나는 것은 정작 들어와야 할 팩스들이 제 때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죠. " 팩스.전화.호출기.PC통신.이메일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한 광고공해가 심각하다.

업무 중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텔레마케터들의 전화, 메일 박스를 열기가 무섭게 떠오르는 각종 사이버 광고, 여기에 호출기.휴대폰까지 잠식해 가는 각종 광고들은 점점 너그럽게 봐주기 힘든 수준이 돼가고 있다.

대기업 전자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강일영 (45) 씨는 영어잡지 구독 전화 때문에 한동안 부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말한다.

'신입사원인데 성과가 없으면 잘린다' 는 하소연에 할 수없이 구독을 한 부서원도 있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콘도회원 모집, 호텔 멤버십 회원 모집 등 이런 전화가 한 두건이 아니기 때문.

PC통신 메일, 인터넷 이메일도 광고장터가 돼가고 있다. 대부분의 통신회원과 네티즌들에게는 지워야하는 편지가 매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실정.

회사원 이은경 (여.35) 씨는 최근 며칠 동안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소개하는 영어 메일이 들어와 깜짝 놀랐다. 읽기에도 민망스러운 각종 음란 사이트 제목들이 죽 나열되어 있어 그때마다 삭제했지만 계속 들어왔던 것.

"안되겠다 싶어 하루는 내용을 꼼꼼히 읽었지요. 다행히 '이런 종류의 메일을 원하지 않으면 아래쪽 주소를 클릭하라' 는 안내가 있더군요. 클릭 후 비로소 메일이 멈췄어요. "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휴대폰.호출기 서비스 업체까지 슬슬 광고에 한쪽 발을 들이밀기 시작한다는 것. 회사 밖에서 대부분 업무가 이뤄지는 회사원 최지석 (30) 씨는 최근 운전 중 울리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수신 신호에 차를 길 한쪽으로 세웠다. 회사에서 급하게 찾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정작 수신된 메시지를 보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바이투게더 마마 압력밥솥 10인용 14만원' 이라는 글자와 전화 연락처가 나타났던 것. SK텔레콤으로 항의전화를 하자 한 관계자는 "휴대폰 회원들이 싼 값에 공동구매를 할 수 있게 하는 '바이투게더' 행사를 소개하기 위해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고 해명했다.

SK텔레콤은 회원들로부터의 항의가 쏟아지자 이후 메시지를 보내려는 계획을 취소했다. 그런가하면 나래이동통신은 최근 이용자들은 '0234509015' 번 호출을 일제히 보냈다. 어디서 하는 연락일까 하고 의아해 하며 전화를 해본 이용자들은 '1년6개월 이상 이용한 고객에게 프로야구 무료 관람에 응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는 나래이동통신측의 음성 메시지를 들어야했다.

"호출기는 정말 급한 용무에 쓰이는 기기 아닙니까. 쓸데없는 광고를 막아주어야 할 서비스업체가 오히려 나서서 광고를 하다니 너무 화가 납니다. " 한 회원의 분노다.

문제는 이런 광고들을 차단할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 삼성전자 서비스센타 한 관계자는 "어떤 팩스 기종도 광고를 사전에 차단할 수는 없다" 고 말한다. 이는 통신과 인터넷도 마찬가지. 천리안의 경우 특정 ID를 가진 사람으로부터의 메일은 차단해 달라는 신청 (GO SOS) 을 할 수 있게 돼있다.

또 1백 통 이상 메일을 한꺼번에 보내는 사람은 천리안 본사에서 조사, 메일 하나가 전송되는데 1분 이상 소모되도록 제동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광고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못된다.

희망을 걸어볼 만한 것이 최근 정부가 시행하기 시작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수신자 의사에 반해 영리목적으로 광고를 보낼 경우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 정보보호과 (02 - 750 - 1263) 로 신고하면 된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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