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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서울 가원중학교 교사 최윤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또래들보다 무척이나 넉넉한 덩치, 소란한 교실의 어떠한 소음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렁찬 목소리, 학급 회장이라는 여유있는 울타리. 이런 요소들이 합쳐진 힘으로 녀석은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하고, 건방졌다.

수업시간, 그의 행동은 다양했다.

이어폰 꽂고 다리 떨며 음악 듣기, 온 분야의 잡지 보기, 엎드려 자는 척하기 등. 무엇에 어긋났는지 나를 의식하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수업 방해 안하고 그냥 저 하고싶은 것 하면 되는 거 아니예요? 제발 저한테 신경 좀 끄고 그냥 놔두세요, 제발. " 녀석은 이미 아이가 아니었다.

아니, 어른을 능가하는 아이였다.

그런 그가, 말할 수 없이 겁 많고 소심했던 내 학창시절과 비교돼 부럽기까지 했다.

외동아들로, 부유한 집안에서, 펼쳐진 자유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그 녀석을 어찌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그러던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책을 펼쳐놓고 수업 내용을 받아 적기까지 하는 평범함도 보였다.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인간적이 돼라' 며 너스레를 떨던 녀석. 그가 주장하는 '인간적' 인 범주에 나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자신이 좋아한다는 가수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라고 해서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철이 들어서인지. 녀석이 더욱 변했으면 한다.

가지지 못한 자의 볼품없음을 이해할 줄 알며,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줄 때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선생님, 실기평가 제대로 안하면 교육부에 전화할 거예요" 를 재치있는 농담인 양 내뱉는 요즈음의 아이들. 그런 아이들 속에서 교사들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가슴앓이만 더해가는 이땅의 많은 선생님들. 그들의 작은 바람은 아이들이 다시 변해가는 것.

다음에 우리 둘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나의 제안에 "어휴~, 선생님도 참~" 하며 어이없어 하는 녀석. 하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서울 가원중학교 교사 최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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