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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 청소년 수련원 르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1일 오전 충남 아산시 C수련원. 여관과 수영장 허가만을 가진 이 업소는 버젓이 '수련원' 이란 간판을 내걸고 청소년 수련시설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서울에 별도 사무소까지 차려놓고 유치원.초등학생들을 집중 유치하고 있는 이 업소는 비상조명설비 등 청소년 수련시설이 갖춰야할 기본설비마저 전무한 실정. 이 업소는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 30일에도 불법 유치한 3백여명의 유치원생들을 상대로 캠프를 열었다.

사고가 터지자 부랴부랴 유치원생들을 돌려보낸 이 업소는 올 여름 유치원.초등학생 4천여명의 예약을 받아놓은 상태다.

이 업소는 청소년지도사가 한명도 없고 시설안전점검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저수지가 있는데도 담장이나 분리펜스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어 어린이들의 익사사고 위험마저 안고 있었다.

또 방 16개가 나란히 배치된 2층 통로는 폭이 1m도 안되는데다 출입구 양쪽의 좁은 계단이 유일한 통로여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 참사 우려가 큰 상태였다.

씨랜드 참사 소식을 의식한 듯,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소화기 몇 개를 닦고 있던 업소 관리인은 "평소 수용인원은 적정 인원 (1백60명) 의 두 배 가까운 3백명 정도" 라고 실토했다.

같은날 경기도 양주군 E수련원. 15평 크기의 방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벽지엔 곰팡이가 가득했다.

이곳 역시 법적으론 청소년 수련시설이 아닌 여인숙이면서도 유치원생들을 모집해 캠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단속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진입로는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비포장도로여서 소방차량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다 소방시설은 낡은 소화기 다섯 대가 고작이어서 만약 6백여명의 수용 어린이들이 잠을 자다 불이 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어린 새싹들이 엉터리 청소년 수련시설에 무방비 상태로 맡겨지고 있다.

씨랜드 참사가 터진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본지 취재팀이 청소년 수련시설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충청도 일대 청소년 수련시설들을 긴급 현장 점검한 결과, 상당수 업소가 기본 설비조차 없는 무허가 불법 업소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허가 업소들도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각종 방화.안전장치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아 어린이들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특히 상당수 업소가 사용하고 있는 조립식 건물은 대부분 얇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 등 인화성 재료로 된 단열재를 채워넣어 화재 발생시 치명적이었다.

거의 모든 업소에 소화시설이라곤 낡은 소화기 몇대가 고작이었고 경찰서.소방서와의 비상연락장치도 전무한 실정이었다.

전국의 청소년 수련시설은 등록된 것만 4백80여곳. 현장 체험을 위해 캠프를 찾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이 이익에만 눈이 먼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다.

최재희.배익준.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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