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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않는 야당은 죽은 야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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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11면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세균 대표가 저서 『정치에너지』에서 국회의장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9월 20일자 11면> 김 의장 인터뷰가 나간 날 정 대표는 ‘김형오 의장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그리고 본지에 “반박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를 24일 오후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났다.

‘김형오 인터뷰’ 반박 나선 정세균

그의 저서엔 지난 7월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법안이 의장 직권으로 상정돼 처리된 과정을 언급하며 김 의장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본회의가 있던 날 아침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모인 자리에 김 의장이 불려 갔고, 심하게 (법안 처리를) 압박하자 그만 굴복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김 의장은 “사실을 크게 왜곡한 것”이라며 “정 대표에게 실망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여 주며, 김 의장이 주장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적이 없는 의장이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 동석해 입법 문제를 논의한 건 불려 간 것보다 더 심한 것이며, 책에선 오히려 점잖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본지 인터뷰에서 “정 대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칠 줄 몰랐다”고 한 부분을 반박할 땐 정 대표의 언성이 높아졌다. 미디어법안 처리 과정을 얘기하면서 “뒤통수는 오히려 그쪽(김 의장)이 친 것”이라고 했다.

“뒤통수 친 건 내가 아니라 김형오 의장”
-정 대표 저서의 일부 대목이 왜곡됐다고 김 의장이 주장했다.
“같은 상황을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책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의장이 한나라당에 불려 갔다’는 대목을 문제 삼았는데 김 의장 자신이 초청했다고 한다면 국회 의장실에서 만나야 맞는 것 아닌가. 당시 언론 보도를 봐라. 거기에도 ‘김 의장이 불려 갔다’는 표현이 나온다.”

-김 의장은 “정 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나는 제발 미디어법안을 직권상정 하지 말라고 김 의장에게 간곡하게 얘기했다. 7월 25일이 국회가 끝나는 날이었는데 김 의장은 22일에 전격적으로 직권상정을 했다. 나는 국회를 다시 열고 31일까지는 협상을 할 걸로 짐작했다. 7월 19일 단식을 시작하면서 ‘적어도 2주 정도는 단식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한 건 그런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김 의장이 일방적으로 직권상정을 해 버렸다. 그런 게 뒤통수치는 거 아니냐.”

-저서엔 김 의장의 직책을 생략한 채 ‘김형오는…’이라고 썼다. 김 의장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제3자적 입장에서 서술할 때 몇 대목을 그렇게 썼지만 김 의장에 대해서만 그렇게 한 게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김대중은…’ ‘노무현은…’ 이렇게 쓴 부분이 있다. 김 의장은 나의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다.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에서 쓴 것은 없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최근 대한민국 국회를 ‘최악의 폭력국회’로 꼽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인격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제도가 미비해서다. 미국은 소수당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미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등의 장치가 보장돼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경우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걸 막으려면 물리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도 그랬다. 법안이 상정되는 걸 막기 위해 두 차례나 국회 법사위 문을 못질한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안기부의 국회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 본청 529호실 문을 통나무로 부순 당도 한나라당이다.”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김형오 사퇴하라”는 피켓을 흔들며 퇴장했는데 좀 심한 것 아닌가.
“현상만 보고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국회의장이 불편부당하게 국회를 운영했다면 야당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현상만 본다면 ‘529호실 사건’ 때 한나라당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안기부의 국회 사찰 의혹에 초점을 맞춘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손학규 불출마 존중하지만 납득 어려워”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우선 병역 문제가 걸린다. 이 얘기는 꼭 써 달라. 대통령도 군대를 가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런 상황에서 총리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것 정말 문제 아니냐. 이명박 정부의 현 내각에서 장관 5명과 대통령실장·국정원장·감사원장도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젊은이에게 군대에 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 후보자의 경우 세금 탈루 의혹도 있다. 또 국립대 총장을 지냈는데 기업인으로부터 용돈을 1000만원이나 받았다. 여기에 아들 국적 문제까지…. 이번 인사청문회 대상 중에서도 최악이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과 청문회 잣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국민은 지난 10년 동안의 청문회를 기억한다.”

-손학규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10월 재선거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닌가.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손 전 대표는 당을 위해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심판하고 선거에 이기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다. 선거 때 베스트 후보를 동원하는 건 정당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승리할 수 있는데 포기하는 정당?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에 비해 당 지지율은 올랐다. 그러나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통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나는 우리가 선명하게 싸울 때 싸우고 협력할 때 협력해 나온 결과라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을 수용하고 동작동 국립묘지 안장을 결정하면서 지지율이 그쪽으로 좀 쏠렸다고 생각한다.”

-정 대표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야당 대표를 하면서 인상이 좀 독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쟁하지 않으면 야당의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고, 여당은 우호적인 의석까지 국회의 3분의 2와 지방 권력의 70%를 장악했다. 여기에 정권 초기부터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 그 상황에서 싸우지 않으면 야당이 아니다. 나는 지난 연말 외교통상통일위 (폭력) 사태에 대한 비판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점거하고 있는데 ‘아, 형님들 잘 하십시오. 다수당 잘 하십시오. 우리는 소수당이니까 가만히 있겠습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난 그렇게는 절대 못 한다.”

-무소속인 정동영 의원은 복당시키는 건가.
“명예로운 합류가 좋지 않겠나. (야권) 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탈당한 지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헌당규상 아직은 복당하기 어렵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이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을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그에 대해 확대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했다면 더 잘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유언을 재생산하거나 그걸 이용해 정치적인 플레이를 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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