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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분위기는 옛말, 한번 가서 쉬고 즐겨 보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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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20면

도서관 역사는 문자의 역사와 나란히 시작됐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도서관에서 흔히 보는 책, 즉 활자를 종이에 인쇄해 제본하는 형태의 기록물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도서관이 있었다. 기원전 3000년께의 수메르인들은 쐐기꼴 문자를 새겨 구운 점토판을 남겼다. 이런 점토판이 무더기로 발굴된 자리는 당시 기록보관소, 지금으로 치면 도서관인 셈이다.

도서관은 놀이터

이런 옛날옛적의 도서관 중에는 현대의 도서관과 비교해도 대단한 규모의 장서를 지닌 곳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운 이 도서관은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를 무려 70만 권이나 소장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얼마나 열심히 자료를 모았는지에 대한 일화도 함께 전해진다. 돈을 주고 책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항구에 정박한 배에 책이 실린 것을 알고 이를 압류해 필사본을 만들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주인에게 원래의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든 필사본을 돌려주려고 한 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옮겨 쓰는 동안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데, 먼저 만들어진 판본일수록 저자의 원문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서관은 이처럼 고대로부터 점토판·파피루스·양피지 등 다양한 매체로 자료를 수집해 왔다. 이런 역사를 되짚으면 21세기의 도서관이 종이책과 더불어 최신 매체인 각종 디지털 자료를 모으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도서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library’는 모아 놓은 자료를 뜻하는 게 먼저였다. 건물을 가리키는 의미는 나중에 더해졌다. 건물이 없는 도서관, 예컨대 온라인에 사이버도서관이 등장하는 것도 도서관의 본뜻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 셈이다. 책의 형태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든, 이 같은 자료를 수집·보관·활용하는 도서관의 기능 자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한결같았던 건 아니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지금처럼 도서관을 자유로이 이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도서관은 책을 독서대 같은 곳에 사슬로 묶어 두기도 했다. 이런 사슬을 누가 왜 어떻게 도입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용자들이 사슬의 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해진 자리에서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래도 책을 궤짝에 넣고 열쇠로 잠가 두던 것보다는 보기 편했던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책을 사슬로 묶는 방법은 근대 이후에도 여러 도서관이 사용했다. 지금과 달리 한 권 한 권의 책이 모두 귀했던 그 시절의 도서관에는 꽤 요긴했던 장서 보관 및 열람 방법이었다. 책을 새로 만들려면 사람이 손으로 쓰는 수밖에 없거나, 인쇄를 하더라도 몇 부에 그치던 시절에는 이처럼 도서관의 무게중심이 활용보다 관리에 기울었다.

과거 우리네 공공도서관도 이용자의 활용을 널리 권장하기보다는 관리를 우선하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이용자의 서가 출입을 제한하고 사서가 책을 찾아 주는 폐가식으로 운영한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자료의 훼손·분실을 막고 정리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에서다. 지금처럼 이용자가 직접 서고에서 책을 고르는 개가식이 전면화된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1990년대 중반 통상적인 자료실에 개가식을 도입했다. 과거에는 또 공공도서관에 들어가는 데 입관료를 내기도 했다. 해방 직후부터 일부에서 시행된 입관료 제도는 60년대에는 법률에 명문화돼 모든 공공도서관에 적용됐다. 공공도서관임에도 수익자 부담을 앞세운 논리다. 이 같은 입관료는 80년대 초 국립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폐지됐고, 관련 법조항도 없어졌다.

요즘이야 공공도서관이 수집·보관한 자료를 이용자들이 널리 활용하도록 다양한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문학강좌·독서토론은 물론이고 어학에서 취미까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이런 서비스의 일환이다. 정독도서관 김선희 과장은 “요새는 이용자들이 도서관에서 문화센터나 휴식공간의 기능도 기대한다”며 “공부하러 오는 것만이 아니라 DVD로 영화도 빌려 보고 앞뜰에서 쉬다 가기도 하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한 번 놀러 오라는 권유다.

도서관에 놀러 가는 것이 도서관의 오랜 역사에서 새로운 일은 아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중목욕탕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공중목욕탕은 사교와 휴식을 다양하게 즐기는 복합시설이었다. 독서 역시 그런 휴식의 방법 중 하나였다. 현대인이라고 이렇게 못 하란 법은 없다. 설령 쉴 생각이 없이 시험 공부를 위해 도서관을 찾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잠시 눈을 들어 서가의 책들에 시선을 주는 여유를 발휘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책과 가까워질 수도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일반적인 의미로 공공을 위해 설립·운영되는 도서관을 뜻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자체는 이를 의무적으로 설립·육성해야 하고, 개인·단체도 설립·운영이 가능하다. 과거 문교부 시절 설립돼 남산도서관·정독도서관처럼 각 교육청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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