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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염병 확산 위험수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전염병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이질은 올해 벌써 7백명이 넘는 환자가 생겼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3천명이 넘는 사람이 이질에 걸릴 것이다.

지난 40년간 이렇게 많은 환자가 생긴 적은 한번도 없다.

대장균 O-157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발견됐고, 15년만에 처음으로 미친 개에게 물린 사람이 사망했다.2000년을 눈앞에 두고 우리나라의 전염병은 그 시계바늘이 1900년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염병이 늘어난 원인이 엘니뇨와 홍수라는 설명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더운 날씨가 문제라면 왜 여름이 오기도 전에 7백명이 넘는 환자가 생겼겠는가.

자취를 감추던 전염병이 갑자기 다시 고개를 들고 나타나는 원인은 사실 학자들도 잘 모른다.

미생물은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이며, 현존하는 미생물은 수억년 동안 지구의 극한 환경을 모두 견뎌낸 적응의 명수들이다.

끈질기게 지구상에서 연명하던 미생물은 적당한 기회가 오면 다시 급격히 증식한다.

따라서 전염병이란 태초부터 급증과 감소를 반복하고 있다는 게 전염병 유행을 보는 나의 시각이다.

인간의 경제활동도 전염병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강을 막아 댐을 세우면 저수지에 모기가 서식하게 되고, 그 지역에는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이 늘어난다.

자급자족 시대에는 가족 내에서만 발생하던 식중독이 이젠 한꺼번에 수백명씩 환자가 생긴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가 낳은 결과다.

야채와 과일은 임금이 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수출되는데, 이때 식품을 타고 후진국 전염병이 유입된다.

멕시코산 딸기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은 미국인들 사이에 급성간염바이러스가 유행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미생물은 여권이 없이도 비행기를 타고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든다.

그래서 경제 선진국들은 전염병 방역에 부심하고 있다.

이질과 말라리아는 발등에 떨어진 불같은 시급한 문제다.

이질균은 세균들 중에서 전파력이 가장 높아서, 음식물은 물론 접촉으로도 전파된다.

이질 환자는 대변으로 수십억마리의 이질균을 배설하며, 뒤를 닦은 환자의 손에도 수많은 이질균이 묻게 된다.

이 손에 묻은 균이 오염된 물건 - 다른 사람의 손-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이질에 걸린다.

이질균은 10마리만 먹어도 발병하는 전파력이 강력한 세균이다.

따라서 아무리 음식을 끓여서 먹더라도 손을 통한 접촉감염은 막을 수 없다.

손을 자주 씻지 않는 우리 국민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없으므로 이질은 계속 유행할 것이다.

93년에 다시 나타난 말라리아는 지금까지 6천명이 넘는 환자가 생겼다.

지난해에만 3천7백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올해는 벌써 지난해보다 더 많은 환자가 생겼다.

서부전선에서 복무하다 걸린 군인이 전체 환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므로 말라리아 때문에 혹시 우리 국군의 전투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발생지역도 해마다 남쪽으로 넓어져 최근에는 서울 근교에서도 말라리아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염병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인식은 아주 낮다.

말라리아나 이질이 톱 뉴스로 취급된 적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질은 손으로 옮기는 전염병입니다. 화장실 다녀온 후, 식사 전, 음식 조리하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읍시다. 설사하는 환자는 식당일을 하지 맙시다.

" 지금이라도 이런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정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전염병 업무가 유기적으로 통합돼야 한다.

농림부 통계에 가축 광견병이 98년에 갑자기 60마리로 늘었다면, 복지부는 국민에게 광견병이 유행한다는 사실을 홍보했어야 할 터다.

학교급식을 먹은 학생이 전체 이질환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급식을 계속 확대하는 정책도 문제다.

말라리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려면 국방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복지부의 방역과가 할 수 없다면 국가 차원의 '전염병관리센터' 를 신설해야 한다.

최근 아시아 각국은 새로운 전염병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홍콩은 조류독감, 대만은 바이러스성 뇌막염, 일본은 대장균 O-157이 크게 유행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전염병 대책이 시급하다.

오명돈 서울대의대 교수.감염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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