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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읽기] 우리 집에서 죽어버린 낯선 남자, 나 어떡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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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문학세계사, 192쪽, 1만원

새벽같이 일어나 중요한 회사일을 처리하려던 당신. 깜빡 늦잠을 자버린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한 상사의 차가운 눈초리. 알 수 없는 건 사람의 심사다. 그런 상황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불의 유혹은 왜 그렇게 떨쳐내기 어려운지. 혹은 골치 아프게 머리 쓰는 창의적인 일보다 단순노동이 스스로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당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훌쩍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곳으로 잠적하고 싶다. 철저하게 익명인 채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

프랑스의 ‘괴짜’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42)의 새 소설은, 최소 단위까지 이야기를 쪼개 나가다 보면 결국 앞서 언급한 인간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포장한 소설의 외피 안쪽엔 누구나 한 번 쯤 느껴봤을 보편적인 정서가 박혀 있다.

요약하면 타락 욕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자포자기 심정, 잠적 욕망 등이 될 텐데, 소설의 주인공인 마흔 두 살의 프랑스인 회사원 밥티스트 보르다브를 통해 그런 감정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르다브, 원치 않는 저녁 자리에서 황당한 얘기를 듣는다.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와 느닷없이 죽어 나자빠진다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은 절대 경찰을 부르지 말고 택시를 잡아탄 후 병원을 가는 거란 내용이다. 경찰을 부를 경우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말 할 수 없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 병원에서 사망을 최종 확인해주기 때문에 소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다음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보르다브 눈 앞에서 나자빠진 인물은, 나이·키가 보르다브와 똑같은 스웨덴인 올라프 질더. 노통브의 엉뚱함은 여기서부터다. 보르다브, 엉겁결에 올라프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환상적이게도 올라프는 늘씬한 미녀 아내와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거처를 올라프의 집으로 옮긴 보르다브, 불안해 하면서도 훌륭한 샴페인과 아늑한 소파의 유혹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비현실적이어서 더 매력적이다. 어쩌면 소설은 ‘읽는 시간 만큼’ 현실로부터의 도피다. 한가지 아쉬운건 마무리가 어정쩡하다는 점. 그렇더라도 소설은 한 번 붙들면 쉽게 놓지 못할 정도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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