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대검 청사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회의는 시종일관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오전 9시30분 정각에 시작된 회의는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마친 뒤 곧바로 속개돼 오후 6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장관.총장의 형식적인 훈시를 듣고 오후 회의를 대충하고 저녁 회식자리를 갖던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 회의 배경 = 박순용 (朴舜用) 검찰총장은 요즘의 검찰상황을 "검사들 사이에 좌절감이 팽배하고 조직이 동요하는, 검찰 사상 최대의 시련기" 라고 진단했다.
검찰 수뇌부가 지난 2월 초 평검사들의 서명파동을 "일부 평검사들의 서명미수 사건" 으로 강변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판이하다.
올해 들어 검찰로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을 출발점으로 심재륜 (沈在淪) 전 고검장의 성명파동과 평검사 서명사태에 이어 김태정 (金泰政) 전 검찰총장 부인의 옷로비의혹 사건, 金전총장의 법무부장관 임명과 보름만의 불명예 퇴진, 진형구 (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 등 일련의 사태들이 불과 6개월 사이에 줄줄이 터졌다.
검찰은 그때마다 폭풍의 정점에서 한번도 비켜가지 못했다.
그 결정판으로 나온 것이 秦전공안부장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제다.
정치권은 특검제를 일반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 경우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아성 (牙城) 은 무너진다.
최근 불거진 검 - 경 갈등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외형상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여론이 "검찰을 못믿겠는데 경찰이 독립한들 무슨 상관이냐" 는 쪽으로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검제가 상설화되고 경찰 수사권 독립이 표면화되면 검찰의 영향력과 위상은 극도로 위축된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단순히 특검제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검찰을 못믿는다는 게 더 괴롭다" 며 "조직이 동요하고 있다" 고 토로했다.
◇ 어떤 대응책이 나왔나 = 검찰 수뇌부는 이구동성으로 신뢰회복을 외쳤다.
朴총장은 "그동안 검찰의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고 시인한 뒤 "원칙과 기본으로 돌아가 오로지 정도 (正道) 만을 당당하게 걷는다는 절실한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자" 고 말했다.
김정길 (金正吉) 장관 역시 "엄정하고 중립적 자세로 모든 사건을 곧고 바르게 처리하자" 고 말했다.
검찰의 모든 문제가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서 시작된다는 비판을 스스로 수용하는 듯한 대목이다.
검찰 수뇌부에 전달된 평검사들의 의견 중에는 "총장이 퇴임 후 일정기간 공직을 맡지 않도록 하자" "대국민 정치중립 선언을 하자" 는 내용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선 또 자체 기강확립을 위해 ▶검사들의 대낮 폭탄주 금지 ▶비리발견시 과거보다 훨씬 엄중한 처벌 ▶암행감사 활성화 방안 등이 제시됐다.
검찰 수뇌부는 "지속적 사정 (司正) 활동을 통해 구조적 비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갈 때만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고 결론지었다.
이는 검찰이 대대적인 사정을 단행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 과연 달라질까 = 검찰 수뇌부가 평검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토론회를 가진 것은 이례적이다.
평검사들 사이에서도 "이대로는 안된다" 는 자성론이 팽배해 있어 변화의 분위기는 조성돼 있다.
그러나 오랜 병의 치유가 쉽지 않듯 과거의 관행과 구태가 하루아침에 달라질지는 의문이다.
또 정치권이 먼저 검찰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종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