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DJ 대북정책] “북 태도따라 햇볕 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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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햇볕정책은 정당하며 계속 추진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북한의 돌출행동에 대한 '사안별 분리대응' 을 언급했다.

이는 햇볕정책의 단골메뉴로 삼았던 대북정책의 일관성.인내심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金대통령은 지난주 서해 교전사태 이후 금강산 관광객 억류, 남북 차관급회담의 난항 등 악재가 잇따르자 햇볕정책의 강도 (强度) 를 조절할 필요성을 느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金대통령의 고민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내년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상황이다.

'북한에 너무 질질 끌려가는 것 아니냐' 는 여론 비판은 金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햇볕정책으로 큰 이득을 본다고 생각했던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도 속을 썩이고 있다.

정경분리 (政經分離)에 따라 금강산 관광 등 민간 경협을 확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이달 들어 서해사태 등으로 끊임없이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난으로 벼랑끝에 몰린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앞으로도 유사한 대남도발로 내부통제를 강화하려 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미.일의 보수파들도 햇볕정책의 위협요인이다.

예컨대 일본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 추가 발사실험을 강행할 경우 대북 경수로사업에 협조하는 것을 재고할 것" 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햇볕정책의 기조를 지키면서 전술적 탄력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을 바꾸고 있다.

먼저 지금까지 느슨했던 남북간 상호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할 작정이다.

'비료를 먼저 주고 이산가족 문제를 나중에 해결한다' 는 소위 선공후득 (先供後得) 방식은 일정기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산가족 문제가 돼야 비료 10만t을 추가로 보내겠다" 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경분리의 틀은 유지하되 민간경협의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겠다는 게 金대통령의 입장" 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민영미씨 억류사건이 해결됐지만 튼튼한 관광객 신변보장 장치를 북측이 거부하면 금강산 관광사업을 재검토한다는 게 金대통령의 생각이다.

문제는 金대통령의 이런 전술적 접근변화를 북측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이 관계자는 "비료와 이산가족을 연계하는 방식에 대해 북한은 돈으로 자기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식으로 반발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럴 경우 남북상황은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金대통령의 새로운 선택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는 우선 북한의 자세에 달렸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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