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6.25- 우리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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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참으로 묘한 곳에서 묘한 사람들을 만나 6.25를 돌이켜보고 있다.

미국의 작고 한갓진 도시 미슐라에 있는 몬태나 대학의 맨스필드 센터가 바로 그런 곳이고, 오늘의 발표자로 나선 백선엽 (白善燁) 전 국군총참모장.에드윈 시몬스 전 미 해병사령관.리 선즈 (李愼之) 전 중국 적십자대표.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49년전 서른 안팎의 그들은 한국군의 젊은 사단장으로, 미해병 중대장으로, 중공군 상교 (上校.대령) 로, 그리고 미군정보부 요원으로 한국전선에서 싸웠다.

혹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혹 맞서 싸운 그들이 이제 백발이 성성한 여든 안팎의 노인이 돼 허심탄회하게 주고 받는 회고는 6.25의 시작과 끝을 아는데 귀중한 증언 이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맨스필드 재단이 기획한 '한국전에 관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라는 이번 모임에서 이들의 증언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요 며칠 진행된 논의에서 제기된 한국전의 성격규정이다.

일찍이 미국의 석학 페어뱅크는 자신의 역저서문에서 태평양전쟁을 미국이 중국을 위해 일본과 싸운 것으로 해석함과 아울러 한국전은 미국이 일본을 위해 중국과 싸운 것으로 단정지으면서 5년도 안돼 연출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개탄한 바 있다.

두 싸움 모두에서 피흘리고 고통당한 한국과 한국인의 몫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해석이다.

그 뒤로도 안팎에서 논의된 한국전의 성격도 보편적으로는 국제전 또는 이데올로기 대리전이란 식의 규정이 우세한 편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한국과 한국인은 대상이나 배경으로 보조기능을 할뿐 주체로 논의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하버드의 관련학과 교수들과 중국.일본에서 초청된 논자 (論者) 들이 가세한 이번 논의에서는 한국전의 내전적 (內戰的) 혹은 동란적 (動亂的) 성격이 강조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전은 강대국 이데올로기의 개입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고, 우리 내부에서 그 요인을 찾아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개중엔 외세 개입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더라도 한국전은 발발했으리라고 단정하는 학자마저 있었다.

우리의 역사적.사회적.지역적 갈등과 모순은 그 자체로 남북전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그들의 논거였다.

얼핏 들으면 한국전에 관한 그같은 성격규정은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아무런 몫을 인정하지 않았던 지난날에 비해 보다 진보적이고 심화된 관점같다.

지난날 한국전이 오직 외세와 이데올로기만으로 설명될 때 은근히 마음 상해한 사람들도 있었고, 더러는 그런 태도를 무시로 여겨 분개까지 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6.25를 우리의 전쟁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셈이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그 전쟁은 우리의 것이었고,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우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무턱대고 반가워만 할 수도 없는 관점의 변화일 수도 있다.

국방과 외교에서의 예속에 가까운 의존관계나 대북 (對北) 정책에서의 부차적 (副次的) 위치는 지난날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때늦어서야 내미는 주체성이 무슨 큰 의미를 갖겠는가.

오히려 이제 와서 새삼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수상쩍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번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국의 공식적인 대표도 아니고, 이러한 성격규정을 바탕으로 이 '잊혀진 전쟁' 을 새롭게 해석해 보려는 야심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더군다나 그 새로운 해석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리라는 추측은 틀림없이 기우다.

하지만 6.25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결코 '잊혀진 전쟁' 이 아니다.

휴전이란 말이 암시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전투행위의 중지 혹은 유예일 뿐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지난 46년 내내 지속돼온 전쟁이었다.

따라서 6.25가 어떻게 규정되는가는 아직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공식적 견해가 되고, 또 그것이 어떤 책임전가의 저의 위에 형성된 것이라면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급한 추론과 자신만만한 오해로 우리를 적지않이 괴롭혔던 브루스 커밍스의 망령을 문득 다시 떠올리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 미슐라에서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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