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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엘리트들의 허상과 미래 파헤친 세권의 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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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우리 시대 엘리트의 허상과 그들의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신간 3권이 함께 나와 관심을 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문화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시 (94년 작고) 의 '엘리트의 반란과 민주주의의 배반' (이두석.권화섭 옮김, 중앙M&B.7천5백원) 과 프랑스 포르셍연구소가 펴낸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엘리트' (김경현 옮김.동문선.7천원) 는 지배엘리트의 비행 (非行) 과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현상을 파헤친 책.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 로버트 달 (84.정치학) 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조기제 옮김.문학과지성사.2만5천원) 은 한계를 딛고 일어서야 할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교과서적 저서다.

래시가 묘사하고 있는 오늘의 엘리트는 이런 모습이다.

"야심에 찬 인물들은 철새와 같은 삶의 방식이 신분상승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 대가를 흔쾌히 지불한다.

이는 바로 중산층에 대한 반란이다.

" 이어 저자는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 "사물이 흔들리고 중심이 흔들리고 무질서가 팽배하게 된다" 는 말로 반란현상을 그리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반란의 근원은 엘리트의 수치심 실종. 포르셍연구팀이 바라보는 엘리트의 모습 또한 래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권력을 물려받는 반사적 습관에 권력의 원천을 두고 있기 때문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결과 엘리트는 과시적이고 거만하며 히스테리적 소비와 부에 대한 허기증만을 지니고 있을 뿐,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대중의 저항감은 "엘리트여, 누구의 이름으로 당신들은 옳으며 누구의 이름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로 표출된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래시는 '민주주의의 생존가치' 를 되묻는다.

공동체주의와 민중주의가 자꾸 고개를 내밀고 사이비 급진주의가 등장하는 것은 그 연장선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이 등장하고 마는데 포르셍연구팀이 그 대안을 찾아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권력의 과대노출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권력의 나쁜 속성 자체를 정복하면서 사회의 새로운 역동성과 의사소통을 하는 미래 엘리트상 구현이 그 해답이다.

로버트 달이 지적하는 민주주의 새로운 가능성은 엘리트에 의한 소수지배 개념 그 자체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대안의 지향점은 '폴리아키' (多頭政).다원주의.공동선 등.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자칫 무정부주의에 대한 향수발동과 맹목적 민주주의 수호론자들의 저항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수호자주의' 는 결국 새 엘리트주의를 탄생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래시의 경우 엘리트의 그릇된 준동을 대중문화의 세례에 의해 형성된 '대중인간' 의 정체성 결여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점이다.

"대중문화는 '극단적 배은망덕' 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맹목적 신념의 결

합체다. 하지만 대중인간은 문명이 주는 혜택을 거만한 태도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했다. "

이런 빈곤한 역사인식의 수준으로는 엘리트의 병폐를 견제하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래시의 말처럼 '감독받지 않는 젊은 상상력의 발동' 은 언제까지고 무력하지 만은 않을 터. 포르셍연구팀의 지적대로라면 '무의미한 개혁 이미지의 함정' 에서 벗어나는 방편도 여기에서 나올지 모른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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