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사태로 체면구긴 북한 군부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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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보복공격을 우려하는 정부와 군 당국의 촉각을 가장 곤두세우게 하는 것은 북한군 수뇌부의 움직임이다.

'강성대국 (强盛大國)' 을 주장하며 군부중심 통치를 자랑하던 북한군이 그 어느 때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만회를 위한 도발이 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군의 지위가 부쩍 높아진데다, 지난해 8월에는 대포동1호 미사일까지 쏘아올리는 '위력' 을 보였던 북한 군부의 체면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방송은 17일 김정일이 대표적 군수공업 밀집지대인 자강도를 찾아 강계트랙터연합기업소.압록강타이어공장 등을 둘러봤다고 전했다.

김정일의 방문은 서해 교전사태에도 불구하고 군부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관심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그동안 목소리를 낮춰왔던 군부 강경파의 입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고 분석했다.

일시적으로 경비정.인명 손실에 따른 인책론이 대두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군비 (軍費) 증강과 해군력 증강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군사정책과 명령체계는 국방위원장 겸 최고사령관인 김정일을 정점 (頂點) 으로 조명록 군총정치국장.김영춘 총참모장.김일철 인민무력상 세 사람이 중심이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이들 수뇌부는 군사력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금강산 관광 대가로 매달 우리측으로부터 송금되는 거액의 달러나 경협자금이 군수공업에 흘러들어갈 우려가 더욱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큰 폭의 물갈이가 이뤄질 군지휘관이나 정책담당자들도 작전실패에 따른 숙청을 두려워해 더욱 강경한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북한 군부의 입김이 거세질수록 남북경협이나 대남 유화론을 펴고 있는 전문관료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김정일도 자신의 권력기반인 군부의 지지를 더욱 굳히기 위해 경제나 주민생활보다 군을 우선시한다는 이른바 '선군 (先軍) 정치' 노선의 고삐를 더욱 죌 것으로 전망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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