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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뇌가 태생적으로 다르다고?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어떤 부모는 아들과 딸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믿고 그대로 실천한다. 아들에게 집 짓기 놀이 기구와 테트리스 게임기를 사주고, 축구팀과 수학 동아리에 들게 했다면 딸에게도 똑같이 해준다. 로절린드 프랭클린 대학의 신경과학자 리즈 엘리엇은 그 부모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Pink Brain, Blue Brain #남아와 여아의 뇌는 본디 다르다는 주장은 잘못… 양육 방식 차이에서 비롯

하지만 엘리엇은 그들의 주목을 끌 만한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신생아들에게 성별 구분이 안 되는 옷을 입힌 뒤 성인들에게 아기들의 성별을 거짓으로 알려주고 그들을 관찰하게 했다. 성인들은 ‘남자 아기(실제로는 여아)’들이 화를 잘 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또 ‘여자 아기(실제로는 남아)’들은 명랑하고 붙임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유아의 성별을 위장한 수십 건의 실험에서 성인들이 남아와 여아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성별이라는 렌즈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봤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머니들에게 생후 11개월 된 자녀가 경사의 비탈길을 어느 정도 기어 내려오는지 짐작해 보게 했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오차 범위가 1도 이내로 비교적 정확하게 자녀의 운동 능력을 추측했다. 반면 딸을 둔 어머니들은 자녀의 운동 능력을 9도나 낮게 추측했다. 실제로 남녀 유아의 운동능력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런 편견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여아의 신체활동을 제한한다.

성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사교적인지 비사교적인지, 신체활동에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 등)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방식과 허용하는 경험의 범주가 달라진다. 생활과 경험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따라서 성인이 된 후 뇌와 행동양식에서 남녀 차이를 초래한다.

이런 차이는 타고났다기보다 양육의 결과다. 엘리엇은 최근 신저 ‘여아의 뇌, 남아의 뇌(Pink Brain, Blue Brain)’를 펴냈다. 그녀는 수백 편의 논문을 조사한 뒤 ‘뇌의 남녀 차이는 선천적’이라는 주장은 “명백히 잘못 됐거나, 어떤 한 연구만을 바탕으로 했거나, 생쥐 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해 추측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례로 여성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 섬유다발이 남성보다 커서 ‘전체론적’ 사고에 더 뛰어나다는 주장은 고작 14개의 뇌를 조사한 1982년의 한 연구를 바탕으로 했다. 50건의 다른 연구에서는 성인과 신생아 모두 그런 남녀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갈등을 해소하고, 깊은 우정을 쌓는데 뛰어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여성의 뇌는 의사소통에 능하고, 남성의 뇌는 공격성을 띠도록 타고났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은 “어린이 뇌의 남녀 차이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성인의 뇌에는 남녀 차이가 있다. 엘리엇은 성인 뇌의 남녀 차이는 남아와 여아의 아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남자 아기들은 여자 아기들보다 짜증을 더 잘 낸다. 그래서 부모들은 ‘비사교적인’ 아들과 교류를 덜 하게 되며 이런 차이는 남아와 여아의 발달 과정에 차이를 초래한다. 생후 4개월 된 남아와 여아는 부모와 눈맞춤을 하는 회수와 시간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교성과 감정표현 ,언어능력 등 부모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하는 특성은 아동기 전반을 통해 성장한다.

따라서 아들은 딸에 비해 말수가 적고 부모와의 감정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자라나게 된다. 엘리엇은 “남아가 여아보다 좀 더 짜증을 잘 낼 뿐인데 부모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성인이 됐을 때 남녀 간에 뚜렷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는 아동이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고 거기에 순응하려는 경향에서도 비롯된다. 사람들은 남아와 여아가 일찍부터 장난감 선호도에서 차이를 보이기(예를 들면 트럭과 인형) 때문에 그런 특성은 타고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엘리엇은 많은 연구에서 생후 6~12개월의 유아는 남녀를 막론하고 트럭보다 인형을 좋아한다고 드러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이들이 놀이 선호도에서 남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는 돌 무렵이다.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고 같은 성별의 나이 더 많은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려 한다. 엘리엇은 “아이들은 취학 전에 이미 (같은 성별의) 또래 집단에서 어떤 행동이 용납되고, 어떤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지를 안다”고 말했다.

이런 놀이 선호도의 차이는 자라면서 점차 커져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성인의 뇌를 형성한다. 남녀의 뇌가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믿음은 실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엘리엇이 그렇게 열정적이고 철저하게 이 문제를 파고드는 이유다. 부모들이 그런 믿음에 따라 자녀를 대하기 때문에 아이들 각자의 잠재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엘리엇은 “아이들은 부모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남녀의 뇌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사고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잘못된 주장이 남녀공학에 반대하고 남학교와 여학교를 분리하게 만든다. 엘리엇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가차없이 반박한다. 엘리엇의 책을 읽고 나면 남녀 차이에 관한 논쟁을 다시 보게 된다.

[필자는 뉴스위크의 과학 전문 기자다.]

SHARON BEG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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