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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20년만에 귀국 홍세화씨·친구 유홍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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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20년 2개월여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은 홍세화 (52) 씨.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가족과 지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평소 가고 싶었던 옛 교정이 있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했다.

그는 첫 소감으로 변화된 조국의 모습에 "낯설고 두렵다" 는 말을 했다. '군사독재가 낳은 마지막 망명객' 인 그가 국내에 이름을 알린 것은 95년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창작과비평사) 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면서부터. 그래도 고국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최근 두 번째 에세이집이 출간된 데다 국내 지인들의 노력도 보태어져 귀국이 이루어졌다. 그가 망명생활에서 느낀 점을 '홍세화 귀국추진모임' 대표이며 그의 오랜 친구인 유홍준 영남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털어놨다.

유홍준 : 자네의 귀국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일 것일세.

홍세화 : 고맙네. 그러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네. 아직 양심수들이 남아있는 현실에서 환영이라니…. 그리고 내가 뭘 한게 있다고.

유 : 하지만 인간은 때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위대한 행동인 경우도 있는 것이라네.

*** '떠난자의 죄스러움' 에 시달려

홍 : 그러나 현장을 떠나 있는 자가 갖는 죄스러움이 항상 나를 옥죄어온 것이 사실이네. 자네가 쓴 미술평론집 제목이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이지. 바로 그 현실과 전통을 멀리 두고 살았다는 것.

유 : 그러나 자네는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현실과 전통을 멀리서 신중히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점도 있지. 마치 다산 정약용이 19년의 유배생활에서 '목민심서' 를 지었고 신영복 선생이 20년 감옥생활에서 '엽서' 를 내놓으면서 현장에 매몰되어 사는 자들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세상에 던질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 펴낸 '세느강은 좌우로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라는 책은 자네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네. 자네는 프랑스문화를 통해 본 우리 문화의 실상과 허상을 이야기하면서 '똘레랑스' , 우리말로 관용 (寬容) 을 상당히 강조했더군.

홍 : 그렇지. 철학교수인 제라르 F.씨가 내게, 책을 쓰면서 한국에 던진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나도 '똘레랑스' 라고 했네. 그랬더니 그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렇지 똘레랑스가 실은 데모크라시 (민주주의) 보다 더 중요한 것이지" 라고 했다네.

유 : 그것의 역사적 형성과정은 어떤 건가.

홍 : 똘레랑스는 유럽의 처참한 종교전쟁이 낳은 교훈적 산물이라네. 18세기에 칼라스라는 사람이 신교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인누명을 뒤집어 쓰고 죽게 되자 이에 격노한 볼테르가 '똘레랑스 조약' 이라는 소책자를 쓴 것이 1763년인가 보네. 우리가 흔히 계몽철학자라고 부르는 몽테스키외, 루소 등 모두가 이 개념을 발전시켰다네.

유 : 볼테르가 이교도에 대하여, 몽테스키외가 이민족에 대하여, 루소가 반대편 정치적 이념에 대한 똘레랑스를 강조했던 것을 자네가 책에서 말하고 있더군.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관용이라는 것이 '두루뭉수리' 로 흐를 위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를테면 비관용주의자에 대해서도 관용은 통하는 것인가.

홍 : 아니라네. 하나의 극단주의, 이를테면 광신도라든지 극우주의는 항상 '앵 (反) 똘레랑스' 라고 부르며 여기에는 철저하게 대항하는 용기와 결단을 갖고 있다네.

유 : 구체적으로 프랑스인들의 관용이 어떤 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인가.

홍 : 이를테면 알제리 독립운동 때 샤르트르가 알제리 독립군의 군자금 전달을 자원했었어. 그때 사르트르를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지. 이에 드골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그냥 놔 두게. 그도 프랑스야!" 여기서 "그도 프랑스야" 라는 말을 잘 음미해 보게. "그도 프랑스인이야" 라고 하지 않았다네.

유 : 그런 똘레랑스가 우리네 삶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나.

홍 : 이른바 '왕따' 겠지. 왕따 현상이란 결국 "너는 우리가 아냐!" 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지.

유 : 그러면 우리의 전통적 가치 중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값할 개념이나 관념은 없을까.

*** 佛 '똘레랑스' 는 '중용' 의 가치

홍 : 있지. 나는 중용 (中庸) 과 외유내강 (外柔內剛) 의 가치라고 생각해. 사회적으로는 중용, 개인적으로는 외유내강의 자세를 보일 수 있는 것.

유 : 자네는 프랑스를 '5천9백만의 개성이 빚은 나라' 라면서 그들의 창조적 개성도 높이 평가하고 있더군.

홍 : '프랑스 혁명사' 를 쓴 미슐레는 이렇게 말했다네.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 " 그럴 정도로 프랑스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며 항시 '나' 를 앞세운다네. 데카르트가 "인간은 생각한다" 가 아니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한 것, 드레퓌스 사건 때 에밀 졸라는 고발문을 쓰면서 "드레퓌스는 무죄다" 라고 하지 않고 "나는 고발한다!" 면서 제3자 입장이 아니라 '나' 의 입장에서 나서는 식이지.

유 : 그런 개성 또는 개인주의가 일상 속에선 어떻게 나타나던가.

홍 : 옷차림만 보아도 알 수 있지. 한국에선 파리를 유행의 도시로 알고 있지만 그 유행의 행태란 어떤 한 스타일을 여럿이 똑같이 입는게 아니라네. 오히려 제각기 자기에게만 어울리는 옷맵시를 추구하는 다양한 개성이 항상 공존한다고 할 수 있겠지.

유 : 그러면 그 5천9백만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은 무엇인가.

홍 : 한마디로 공화주의야. 프랑스를 이해하려면 프랑스의 공화주의 전통을 올바로 알아야 해. 예를 들어 자크 시락은 '프랑스의 대통령' 이라고 말하지 않고 항시 '프랑스공화국의 대통령' 이라고 말하고 있다네.

유 : 그 공화주의의 핵심적 개념이라면?

홍 : 요컨대 '사회 정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는 것이지. 이는 프랑스인들이 이기주의를 경멸하고 서로 연대하는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프랑스 공화주의 사상의 핵심이라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했지만 그것이 그저 법조문에 활자로만 박혀 있을 뿐 체감되는 그 무엇이 없는 것과는 다르지. 나는 이런 얘기를 우리 젊은이들과 좀더 진지하게 토론하고 싶어.

*** 젊은이들과 진지한 토론 원해

유 : 그러게나. 나도 자리를 만들어주겠네. 아마도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 모처럼 자기 성찰적인 토론의 장으로 될 걸로 기대되네. 언제쯤 가족 모두가 한국에 와서 살게 되겠나.

홍 : 애들 교육 문제도 있지만 나 자신 아직 파리에 머물면서 좀더 하고픈 게 있고, 또 서울의 집값과 물가를 생각하면 끔찍스런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오긴 빨리 오고 싶을 뿐, 확답을 못하겠어.

유 : 귀국환영회가 목요일에 끝나면 어디부터 가보고 싶은가.

홍 : 하늘가로 굽은 능선이 펼쳐지는 우리의 들판이 보고 싶어. 그런 포근한 들판이 유럽엔 없어. 고국의 모습과 비슷한 곳을 무척 찾아다녔는데 끝내 못 찾았어. 그래서 우리 집사람은 자네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를 읽고 감격하면서 그 답사회를 한번 따라가서 들과 산을 누비며 문화유산을 찾아가는게 소망이라고 했다네. 자네의 그 입담과 넉살까지.

유 : 꼭 오게나. 이달 20일 우리 답사회의 '남한강변의 폐사지' 답사에 정식으로 초대하네. 지금 자네 고국의 들판은 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네.

정리 =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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