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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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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주말엔 웬일로 별다른 약속도 할 일도 없었다. 학회도 없고, 결혼식도 없었다. 텅텅 빈 이틀이 내게 주어진 토요일 아침이 당황스러웠다. 기분이 좋다기보다 일단 긴장이 되고 뒷목이 서늘했다. ‘혹시 뭔가 큰 일을 빼먹은 게 아닐까?’

일어나서 일정표를 저장해놓은 휴대전화를 열어 확인을 해보았지만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낼 원고나 논문 수정본을 잊었나 해서 컴퓨터를 켜서 e-메일을 확인해보니 ‘올 클리어’다. 안심이 되자 이제는 ‘아이들과 어디 놀러 갈까?’라는 계획을 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못 놀아준 죄의식의 보상심리?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가거나 북페스티벌에 가서 책을 고르거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오후에 한강에 가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몇 시간 타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럼에도 아직 일요일이 남아있다는 것이 뿌듯하면서 내일은 뭘 하고 보내야 할지 배부른 고민이 들었다. 다음 주 준비할 일을 미리 당겨서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해 보자. 어떻게 되나’ 하는 마음을 먹었다. 미리 한다고 그 일이 없어질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일요일 오후 소파에 누워서 사놓기만 하고 보지 않던 책들을 읽다 낮잠을 자며 사치스러운 게으름을 만끽하였다. 그제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요일 오후가 느껴졌고 햇살 좋은 가을빛과 바람이 얼굴에 와 닿았다. 아무 계획 없이 할 일 없이 있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인 줄 예전에 몰랐다. 주변을 보면 나만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중에는 빡빡하게 차 있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주말에도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가거나 명소를 찾아간다. 차가 막혀 긴 시간 운전을 하며 신경이 곤두서고 모두가 지쳐서 돌아오더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월요일 아침에 직장동료들이 “주말 어떻게 보냈어?”라고 물었을 때 “응, 그냥 집에 있었어”라는 말보다는 뭔가 했다고 할 것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마디로 ‘실적지향적 놀이문화’다. 노는 것 자체도 실적을 쌓듯 하니까 쉬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스트레스일 뿐이다. 딱히 이름 붙일 수 없는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채워 넣으려고 한다. 놀긴 놀았으되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과 지난 주말의 나를 위한 처방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는 것은 언제나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더 열심히 하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다. 그 이유는 빈 상태로 유지되면 원치 않는 것이 몰려들어올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쓸데없는 것이라도 채워 넣으려 한다. 화장실에 갈 때 신문이라도 들고 가는 심정과 같다. 그 불안감을 제어하고 거기서 해방될 수 있을 때 진정한 휴식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 경험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게으름의 달인 수준이 되면 안 되겠지만, 일단 꾸준한 각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을 보내보니 그렇다. 이제는 빈 공간이 조금은 덜 어색해졌다. 물론 다음 주말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교수·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