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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내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요즘 방영중인 TV드라마 '왕과 비' 에 나오는 세조의 며느리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훗날 아들 (成宗) 이 즉위하면서 소혜왕후로, 인수대비로 책봉되지만 손자인 연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다.

그녀는 생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이 부녀자들의 수신서인 '여사서 (女四書)' 의 한글번역 보급과 부녀자들에게 예의와 범절을 가르친 '내훈 (內訓)' 의 편찬이었다.

'여사서' 와 '내훈' 은 훌륭한 여성으로 이끄는 지침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 책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여성 자신만의 힘으로 누구나 훌륭한 여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곧 출가 전의 여성은 부모와 가족의, 출가 후의 여성은 남편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어야만 훌륭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여사서' 의 '부부' 편 제2장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아비가 어질지 못하면 아내를 거느려 통치하지 못하고, 아내가 어질지 못하면 지아비를 섬기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아비가 아내를 다스려 통치하지 못하면 예의에 맞고 위엄있는 거동을 폐하게 되니 이지러지고, 아내가 지아비를 섬기지 못하게 되면 의리가 무너지고 떨어져 없어지리니…" .

곧 한가정에 있어서 아내의 훌륭한 역할은 남편과의 상대적 개념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훌륭한 남편이 훌륭한 아내를 만들고, 훌륭한 아내가 훌륭한 남편을 만드는 것이다.

일정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거쳐 한 가정의 안주인이 되는 요즘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육이 미흡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내로서의 '교육' 을 통해 아내의 행실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교육' 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한데 '옷 사건' 파동 이후 정부가 마련한 공직기강 확립대책에 '5급 이상 공무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특별 윤리교육을 실시한다' 는 방안이 포함됐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발상까지 나왔을까만 아내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은 우선 남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발상임은 확실하다.

굳이 '윤리교육' 을 실시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공직자나 공무원들 자신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나라 일을 어떻게 맡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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