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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원 정국구상] '김법무 처리없인 대화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3 재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는 양 날개를 달았다.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잠재웠고, 대여 공세의 고삐도 쥐었다.

그는 일단 대여 (對與) 강공 입장을 분명히 했다.

4일 기자회견의 곳곳에는 싸늘한 기운이 넘쳤다.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집중 거론하며 현 정권의 도덕성을 잔뜩 깎아내렸다.

그는 "옷 사건은 현 정권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 이라면서 '눈과 귀가 막혀버린 대통령' '권력의 맛에 도취한 정권' 이라는 거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김태정 법무부장관의 해임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재수사를 거듭 요구하고, 이러한 요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단호한 결단을 내리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가 말한 '단호한 결단'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李총재는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회견문 작성작업을 맡은 핵심 측근은 "金장관을 해임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 이라고 해석했다.

金장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그 어떤 문제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원내에서는 이날 제출한 국정조사권 발동 투쟁으로, 원외에서는 이날 포항에서 가진 국정평가대회 같은 대중집회를 통해 대여 압박을 계속 가한다는 전략이다.

李총재의 이같은 강공에는 金장관 해임건이 내년 총선까지의 정국 주도권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金장관이 경질되면 李총재로선 청와대를 상대로 전과 (戰果) 를 올린 셈이 되고, 설사 경질되지 않더라도 야당으로선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공격 소재이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또 金장관 해임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여권과 대화할 뜻이 없음도 분명히 했다.

"영수회담을 제의할 생각도 없고 그럴 기회를 가질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고 했다.

5일 청와대 오찬 참석 요청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李총재의 강공 행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또 얼마만큼 먹혀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등돌린 민심' 이 한없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옷 사건도 야당의 주도적 역할보다 뜻밖에 불거져나온 사건에 편승, 재미를 본 것에 불과하다.

재선거에서 정국 주도권을 쥐었다지만 옷 정국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 주도해나갈지 아직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다.

재선거 승리에 묻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주류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회견은 장기적 비전이나 정국운영 방안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며 李총재의 리더십에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더구나 재선거 참패로 궁지에 몰린 여권이 어떤 국면 전환용 카드를 들고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다.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벌써부터 사정 (司正)에 대한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李총재의 한 핵심 측근도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금같은 체제로는 오히려 역풍에 말려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며 주도적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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