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되찾은 흑인병사의 훈장…2차대전 영웅 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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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쟁영웅에서 졸지에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해 억울하게 퇴역했던 미국의 한 흑인병사.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집요하게 투쟁하는 맏며느리의 사연이 미국사회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고 (故) 에디 카터 중사는 2차세계대전중 혁혁한 전공을 세워 훈장까지 탔지만 종전 후 불어닥친 매카시즘 선풍에 휘말려 직업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는 지난 63년 폐암에 걸려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수년전 집 창고를 정리하던 맏며느리 앨런 (30대 중반) 은 시아버지가 백악관.육군본부.국방부에 보낸 편지를 우연히 발견한다.

편지는 억울한 퇴역에 대한 호소.분노.눈물.한 (恨) 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앨런은 결혼전 숨진 시아버지라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억울한 사연을 풀어 집안의 명예도 회복시켜야 겠다" 고 결심하고 군과 정부기관의 관련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시아버지의 강제퇴역이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 마녀사냥식 반공주의의 결과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리고 각처에 항의하며 시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앨런은 미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최신호 (5월 31일자)에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공개하고 "미국 반공주의자들 때문에 아버님이 불명예 퇴역하는 등 인생을 망쳤다" 며 "미국 정부는 참회의 용서를 빌어야 한다" 고 고발했다.

191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카터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자랐다.

18세때 중국 인민해방군에 자원입대,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했고 38년 스페인 내란 때는 시민혁명군에 참여해 우익 프랑코정권과 맞서 싸웠다.

이어 42년 미 육군에 자원입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의 인생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46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뒤 한 파티에 참석하면서부터. 좌익단체 '미국민주청년' 이 후원하고 프랭크 시내트라.잉그리드 버그먼 등 인기 연예인들도 다수 참여한 파티다.

반공세력들은 이 파티를 격렬히 비판했다.

이때문인지 군 당국은 49년 카터가 제출한 복무연장 신청을 거부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며 조국을 편견에 빠진 국가로 비판해 왔다" 는 게 이유. 카터는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 (NAACP).미국시민자유연맹 (ACLU) 등을 통해 부당한 퇴역에 항의했다.

국방장관에게도 "혐의내용이라도 알려달라" 며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불명예 퇴역에 대한 재심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카터는 타이어공장의 노동자로 전전하며 어렵사리 말년을 보내다 삶을 마감했다.

앨런의 잇따른 호소를 접한 미 정부는 지난 97년 카터에게 '명예의 메달' 을 수여했다.

2차 세계대전중 싸운 다른 흑인병사 6명과 함께. 일단 명예회복은 된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퇴역조치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앨런은 "조국에 그토록 충실했던 아버님이 배반자라면 과연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살아있는가" 라고 목청을 높이며 정부의 진정한 사죄가 있을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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