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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속엔 광개토대왕의 피가 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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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그 날 오후. 우뚝 선 '돌덩이' 하나에 고스란히 시선을 빼았기고 말았다.

그제야 난생 처음 알았다. 그 돌덩이가 그토록 당당하고, 기개있고, 위용 넘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임순형 사장이 실제와 똑같이 만든 광개토대왕비를 어루만지며 웃고 있다.

1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의 한 야외 음식점.

너른 앞마당에 들어서니 큼직하고 네모난 돌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위압적이다. 바로 앞에 다가서니 고개를 추켜올려야 위 끝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돌은 음식점 사장이 세워 놓은 광개토대왕비의 모사품이다. 비록 서 있는 곳은 본디 제자리가 아니지만 크기며 재질, 비석에 새겨넣은 문구 모양 등이 실제와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높이 6.39m, 가로 1.8m, 세로 2m에 무게가 47톤인 비석은 2000㎞ 떨어진 중국에서 돌을 구하고, 문구를 새겨 넣고 그렇게 모든 작업을 마친 뒤 지난 6월 중순 한국 땅으로 들여 왔다.

한참 비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사장 임순형(49) 씨가 뛰어 나와 반갑게 맞아 준다."야, 이거 대단하군요. 어떻게 이런걸 만드셨어요?" 감탄사를 내뱉으며 질문을 던지자 임 사장이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공부부터 시킨다. 비석의 내용이며, 역사적 의미가 줄줄 나오는 게 영락없는 사학자다.

▶ 임씨가 만든 광개토대왕비의 위용. 실제로 보면 더 압도적이다.

비도 오고 광개토대왕비를 모셔 놓은 자초지종도 듣고 싶어 음식점의 안채 마루로 들어갔다.

비석을 만든 동기가 궁금했다. "뭐 별 것도 아닙니다. 중학교 때 역사 교과서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사진으로 봤는데 왠지 모를 감동 같은 게 느껴지는거예요. 그 때부터 비석이 가슴 속 한구석을 차지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품었던 사진 한 장의 감동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사진 속의 광개토대왕비가 실제로 그렇게 장대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아무튼 세월이 흐르고 어머니의 음식점을 이어 받아 운영하던 그에게 어느 날 '사건'이 생겼다. 지난 1999년 백두산과 중국 길림(吉林)성 연길 지역을 관광하던 길에 우연히 광개토대왕비를 보게 됐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멈추는 것 같더니 두근두근 거리더라고 했다. "그런 심정은 처음이었어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움직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 비석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국력이 얼마나 컸는지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무언엔가 끌린 듯 곧장 '행동'으로 이어졌다.

▶ 임순형 사장이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글씨의 탁본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당장 비슷한 돌이 있는지부터 알아봤지요." 먼저 고구려 수도였던 길림성 집안시(市)의 국내성에서 유사한 돌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엔 붉은 돌 뿐이었다. "광개토대왕비는 검은 돌인데, 국내성엔 장군총에 쓰인 것과 비슷한 돌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으로 눈을 돌렸다. 그 곳이라면 비슷한 돌이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 생업이 있는 임 사장은 중국에만 머물 수 없었기에 '등'이라는 중국인 석공(石工)에게 뒤를 맡겼다. 광개토대왕비와 크기며 재질이 똑같은 돌을 찾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광개토대왕비를 본 적이 없는 석공을 위해 높이며 둘레며 자세한 수치를 적어 그의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 2002년이 됐다.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허베이(河北)성의 어떤 현에서 돌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모양이 영 아니었다. 두번째 시도가 이어졌다. 이번엔 기념품처럼 파는 광개토대왕비 모형을 석공에게 사다줬다. 그랬더니 비슷한 돌을 구하긴 했는데 이번엔 잘못해서 돌을 깨뜨렸다고 한다. 세번째 시도에선 석공을 광개토대왕비로 직접 데려 갔다. 눈으로 직접 봐야 제대로 된 돌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곡절을 거쳐 결국'오석(검은 돌)'을 구했고 제 2 의 광개토대왕비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글씨는 탁본 등을 참고해 일일이 새겨 넣었다. 이름난 석공이 직접 비석을 보고 작업을 했기 때문에 최대한 글씨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 그가 세운 비석을 보고 한 택시기사가 한글로 풀어낸 비문 내용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비석이 웅장하고, 보기 좋아서 본따서 만들려 했던건 절대 아니예요." 그가 광개토대왕비를 만들었던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고구려의 기상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받아 들이고 싶었지요. 광개토대왕의 혼을 실은 비석이라면 이토록 어려운 시절에 용기백배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도 같았고요."

그는 비석을 완성하기까지 5년 동안 중국을 5번 왔다 갔다 했다. 죽을 고생도 했다. 한번은 가을에 북경에서 국내성까지 1600㎞를 차 타고 가는데 기름만 넣고 쉼 없이 달렸더니 23시간이 걸렸더라고 했다. 그런데 월동 장구도 없던 터에 차가 뒤집어져 꼼짝없이 얼어 죽을 뻔했다고 한다. 몇 ㎞를 걸어 헤매다 불이 켜 있는 곳을 가보니 '초시'역이라는 곳이었단다. '누완치(라디에이터)'를 붙들고 몸을 녹이다가 차 바퀴를 고치러 갔다. 그런데 그 단순한 작업을 하는데 세시간이 걸리더란다. "그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죠. 이 사람들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구먼요."

아무튼 힘들었던 시간을 거쳐 지난 6월 12일에 그의 음식점 앞마당에 비석이 우뚝 세워졌다. 5년간 꾸었던 꿈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의 감개를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속물스럽지만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들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 왔다. "그동안 광대토대왕비를 버려 놓은 것만해도 죄송한데 돈이 뭐 문제가 되겠습니까." 끝내 비용은 밝히지 않았다.

작업에 매달려 있는 동안 광개토대왕과 고구려 공부도 많이 했다.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 했다. 임 사장은 "알렉산더나 징기스칸 못지 않은 광개토대왕을 우리가 스스로 비하하는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어요."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의 표현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한마디도 빠지지 않았다. "중국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광개토대왕은 우리의 조상이고, 우리는 그들의 자식입니다. 이게 어디에 갈 수 있나요?" 차분하게 그의 말은 계속됐다. "광개토대왕의 피는 아직도 우리 몸 속에 흐릅니다."

▶ 그의 음식점 한 쪽에 걸려 있는 지게. 이 밖에도 수천 점의 옛날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에 광개토대왕비를 다시 찾았을 때라고 한다. 깜짝 놀랐다. 비석 주위에 유리가 둘러쳐져 있는 게 아닌가. 중국 정부가 보존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다음부터 동북공정이니 뭐니 시끄러워졌고, 광개토대왕이 왠지 유리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이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장군총도 실물처럼 만들어 재현해 보고 싶지만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아무래도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겉은 장군총처럼 만들고, 안을 고구려 박물관이나 고구려 테마를 가진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젊은 청소년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올 가을엔 광개토대왕비를 찾아 살풀이 같은 것도 해 볼 참이다."그래도 우리가 가서 광개토대왕의 답답함을 풀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쯤되면 거의 광개토대왕 지킴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옛 것에 관심이 많은 게 그의 천성인 듯싶다. 생활 농기구에도 관심이 많은 그다. 음식점 뒤 편에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옛 농기구를 주르륵 전시해 놓았다. 어른들에겐 풋풋한 향수를 안겨주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공부감이 될 것 같다. "몇천 년을 우리 곁에 있었던 농기구들이 불과 몇 년만에 사라져 가는게 가슴 쓰렸습니다." 이들 중엔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이 버리고 갔던 농기구들도 많다고 한다.

임 사장은 이 곳에서 6대 째 살고 있다. 식당 홍보 하는 것 같아서 쓰기가 좀 뭐하지만 이것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너른 마당(실제로 음식점 이름이 너른마당이다) 한 쪽에 도자기 굽는 것 처럼 생긴 가마가 있길래 뭐냐고 물어 봤다. 그가 "오리 굽는 가마"라면서 문을 여는데 기름이 쪽 ̄ 빠진 오리들이 꼬챙이를 타고 뱅뱅 도는데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간다. "식도락가인 백파 홍성유 선생님도 우리 집 맛을 인정했습지요." 너털웃음을 웃는 그의 등 뒤로 어느새 비가 그쳐 갔다.

▶ 가마에서 빙빙 돌아가는 오리 구이. 꼴딱 침이 넘어간다.

◇주변에 들를만한 곳=TV 드라마 배경으로도 많이 소개된 '원당 종마 목장'이 바로 옆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진초록의 초원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11만 평 부지에 5만여 평의 초원이 건너 편 야산 밑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하얀 색 울타리가 초원과 어우려져 유럽의 낭만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입장료는 무료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문을 연다. 화요일은 쉰다.(자료=고양시 덕양구 홈페이지, www.goyang.go.kr)

주요 사적지인 서삼릉도 가까이 있다. 조선시대 왕조의 무덤으로 효릉.희릉.예릉의 3능이 서삼릉이다. 한양골프장과 훼릭스 수영장도 근처에 있다.

◇어떻게 가나=자가용을 이용한다면 통일로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 가다 연신내를 거쳐 구파발 삼거리에서 일산 쪽으로(반 좌회전) 방향을 튼다. 이후 직진하다 고가도로를 탄 뒤 검문소에서 좌회전(비보호)을 한다. 삼송역을 지나 고양종합고등학교 앞 신호등에서 다시 좌회전을 하고 직진한 뒤 조금만 더 가면 길가에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끼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너른마당이 나온다. 원당이나 일산 쪽에서 올 경우 훼릭스 수영장 건너편, 즉 한양 골프장 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찾기가 쉽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서 내린 뒤 5번 출구로 나온다. 보성약국 앞에서 서삼릉.농협대학 등의 목적지가 적혀 있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너른마당에서 내린다. 실제 정류장이 아래 쪽에 있어 운전 기사한테 너른마당에서 세워달라고 하면 된다고 한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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