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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의 큰스승 김흥호 조명…동학들, 전집발간 나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사람들은 아침.점심.저녁 밥을 먹는다.

삼시 세때 먹고 하루를 그렇게 나누며 살아간다.

일식주야통 (一食晝夜通) .그러나 한끼만 먹어 낮밤을 트고, 즉 시간을 초월해 사는 우리시대의 도인 (道人) 이 있다.

현재 (鉉齋) 김흥호 (金興浩) 씨는 35세부터 하루 저녁 한끼 식사만으로 지금 나이 꼭 팔순인데도 어느 젊음 못지않은 건강을 지키고 있다.

시공 (時空) , 동서고금, 인 (仁.종교) 의 (義.철학) 예 (禮.예술) 지 (智.과학) 를 초월, 아니 하나로 꿰뚫으며 오늘도 후학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그런 우리시대의 '양복 입은 도인' 의 전집이 출간된다.

강영훈. 김동길. 류달영. 서영훈. 이규행. 이어령. 장상씨등 현재와 이야기를 나누며 혹은 강의를 들으며 단순한데도 폭넓고, 깊은데도 쉬운 그의 사상과 삶을 흠모하는 동학.후배 21명은 간행위원회를 구성, '김흥호 전집' 을 펴내기로 하고 1차로 '양명학 공부' 두권 (솔출판사.각 1만5천, 1만3천원) 을 최근 펴냈다.

내년말까지 총 27권으로 펴낼 전집은 1부 동서양의 고전 해설, 2부 동서양 대표적 철학 해설, 3부 수상.일기.설교집으로 크게 나뉜다.

'양명학 공부' 는 주자의 형식적인 유학을 탈피 지행합일 (知行合一) , 실천유학의 길을 연 중국 왕양명 (王陽明) 의 양명학의 요체인 '전습록 (傳習錄)' 을 풀이한 것으로 처음으로 완역됐다.

원문을 빠짐없이 수록, 번역했을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철학과 종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뜻을 오늘 우리에게 맞게 쉽게 풀이한데서 책의 진가는 드러난다.

양명은 자신안에 들어있는 순진한 생각 '양지 (良知)' 만 붙잡으면 누구나 성인이 될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평생 깊이 생각했다.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야한다.

그래서 쉽게 말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현재 말하면서 오늘날 개념이 개념을 물고 늘어져 도대체 실체, 진리는 무엇인지 잡히지 않는 난해한 담론들을 '지적 사기' 로 꾸짖는 듯하다.

'전습록' 을 양명의 제자들이 그의 말과 편지를 모아 펴냈듯 '김흥오 전집' 도 일기와 수상등을 제외한 대부분을 제자들이 강의를 옮겨적어 펴내고 있다.

현재는 강의 때 사전준비를 전혀 안한다.

입을 열면 진리가 되고 육신 자체가 말씀이 될 정도로 지행이 일치한다는 것이 제자들의 말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현재는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동서양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사상가 유영모를 만나 종교철학의 길로 접어든다.

이화여대.연세대.감신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다 84년 이화여대를 정년퇴임했다.

목사 안수까지 받은 현재지만 젊은 시절 '내가 진정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고 물으며 납득할만한 믿음, 도 (道) 를 얻기위해 스승을 찾아다니고 동서양 고전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얻어 쉽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교수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일요일마다 이화여대 강당에서 동양고전과 성경을 강독해오고 있다.

지금도 그 교실에는 대학교수에서부터 승려.한학자.학생등 1백여명이 모이고 있다.

전총리.대학총장.석학등 쟁쟁한 사람들이 기꺼이 간행위원으로 전집을 내는데 참여하고 있는 우리 시대 큰 스승이지만 우리는 그를 잘 모른다.

그만큼 길 (道) 이 아니면 세상 속에 드러내지않았던 은자 (隱者) 의 삶과 사상이 이제 전집으로 우리 앞에 오게 되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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