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性탐닉하는 여성-日소설 영화화 '육체의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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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64년 발표한 '육체의 학교' 는 2차 대전후 전쟁미망인들의 성생활을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돈으로 젊은 남자를 사 '욕망' 을 채운다는 줄거리. 당시 전후 일본의 상황에서는 쇼킹한 소재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육체의 학교' 는 이 소설의 프랑스판이다. 시공간을 현재의 파리로 바꿨다. 각색 과정에서 자연스레 사회 병리적 측면은 탈색됐고, 그 빈자리는 남녀관계의 내면묘사로 채워졌다.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인 도미니크 (이사벨 위페르) 는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중년의 독신여성. 어느날 친구와 함께 우연히 게이바에 들렀다가 '젊은 남자' 켄틴 (뱅상 마르티네즈) 을 만난다. 둘은 동거로 이어진다.

점점 켄틴에 빨려들어가는 도미니크는 뒷조사를 통해 그 남자가 양성 (兩性) 남창임을 알고 괴로워한다. 영화는 이 둘을 통해 통념으로 고착화된 남녀관계를 뒤집는다. 여성이 남성의 성적 탐닉, 혹은 구원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여성이 완숙한 남성의 역할을, 남자가 숙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역할로 뒤바뀌는 데에 '영화적 즐거움' 이 있다.

그러나 그 '뒤바뀜' 이 순탄치는 않다. 아랍계 빈민층으로 가족의 부양을 위해 몸을 팔았던 켄틴은 매춘남이라는 사회적 컴플렉스로 똘똘 뭉쳐있다. 이 때문에 부과 권력으로 그를 사려는 도미니크에게 언제가는 버림받을 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초반부터 치열한 '파워게임' 으로 얽킨 둘의 관계는 결국 결실을 맺지는 못한다. 켄틴을 완벽하게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도미니크는 그를 싸늘하게 뿌리친다. 도미니크는 눈물로 그와 이별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인 위페르는 집착과 질투의 화신인 도미니크 역을 열연했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는 열정에서 헤어짐까지 다양한 감정의 폭을 넘나든다.

그녀는 주로 장 뤽 고다르.클로드 샤브롤 등 프랑스 거장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지난해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 여우주연상이 유력했으나 막판 탈락하고 말았다.

75년 '살인음악가' 로 데뷔한 브누아 자코는 프랑스의 중견감독.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성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모든 질서의 전도 (顚倒) 된 가치를 그리고 싶었다" 고 했다.

이런 주제의식 때문일까. 자칫 제목에 '현혹' 돼 노골적인 정사장면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성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다도 사랑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5일 개봉.

정재왈 기자

작품성★★★☆ 오락성★★★

*★5개 만점,☆은 반점 (중앙일보 영화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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