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파리산책] 대통령도 손 못대는 총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그래도 당신은 좋은 대통령 만나 행복한 줄 아시오. 옐친, 그 사람은 그 동안 총리를 네명이나 갈아치우지 않았소. " 얼마전 각료회의 석상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2일) 을 앞둔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우파가 코르시카 스캔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데 대해 좌파 출신인 조스팽 총리가 불평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보인 반응이다.

조스팽 총리 (사회당) 는 프랑스 제5공화국 총리 가운데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인기란 게 시간이 지나면 식게 마련이지만 그의 인기는 내려갈 줄 모른다.

취임 당시 기록했던 55%의 지지율이 최근 조사에서는 63%로 올라갔다.

시라크라고 해서 옐친처럼 총리를 갈아치우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당장에라도 성가신 동거 (同居) 정부를 뒤엎고 자기 사람을 총리로 앉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못하는 건 조스팽의 인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치 않으면 대통령도 못하는 것, 그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조스팽은 정직.투명.겸손.근면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소신이 분명하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할 줄도 안다.

약점을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능란한 정치수완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권 (大權) 을 노린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정치분석가인 스페판 로제는 "조스팽의 인기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유지된다" 고 말한다.

일종의 거품을 경계한 지적이다.

남녀노소.계층에 관계없이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 게 오히려 문제라는 경고도 있다.

좌파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은 "좌파정치인으로선 결코 이상적 상황이 아니다" 고 꼬집었다.

지지기반 없는 인기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경고다.

배명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