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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 살던 '육지속 섬'-강원도 화천 비수구미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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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딱 3년만 화전해 목돈벌자는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왔지요. 그러던 것이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화천읍에서 놀러오는 손녀딸 혜원 (2) 이 재롱에 시간가는줄 모릅니다. " 파로호 상류의 오지마을 비수구미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2리)에 사는 장윤일 (57) 씨의 설명이다.

평화의 댐에서 뱃길로 6~7분 거리에 있는 비수구미는 파로호의 '외톨이 마을' 이다. 고로쇠.박달.자작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계곡에는 산천어.꺽지.버들치 등 맑은 물에서만 사는 민물고기가 떼지어 노닌다. 매년 장마가 지나고 파로호에 물이 들어차면 호수는 집 앞마당까지 찰랑거린다.

비수구미는 6.25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짓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많을 때는 6가구가 밭을 일구며 생계를 이었으나 화전이 금지되면서 모두 떠나 3가구 6명의 주민만 살고 있다. 파로호 상류에는 비수구미 말고도 작은 마을이 여럿 있지만 비수구미가 그중 큰 (?) 마을이다.

평화의 댐이 들어서고 마을 위로 도로가 나기 전만 해도 이곳은 완전한 오지였다. 하루 품을 팔아야 읍내에 갈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당시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댐덕분에 지금은 교통이 많이 좋아졌지만 고기가 예년만큼 잡히지 않아 낚시꾼들의 출조가 많이 줄어들었다.

"파로호는 낚시꾼들에게는 '붕어의 메카' 로 소문난 곳이지요. 여름이면 낚시꾼들에게 매운탕 끓여주며 날밤 세기를 밥먹듯 했어요. 그렇게 이를 악물고 살아왔기에 애들 공부 가르치고 지금 사는 기와집도 짓게 됐다. " 고 부인 김영순 (50) 씨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집집마다 배.자가용.경운기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비수구미 (秘水九美) 는 '아홉개의 구비를 돌면서 소 (沼) 와 물이 함께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한다' 고 해서 불리우고 있으나 정확한 의미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아름답고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최근에는 트레킹 명소로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긴 해산터널 (1천9백86m) 을 지나면서 오른 편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비수구미 마을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이 군청에 요청해 폐쇄됐다.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40여분 소요된다.

비수구미마을의 3가구는 민박을 운영한다. 방은 총 10개로 요금은 1박당 2만~3만원. 식사는 산채정식이 1인분 4천원. 짙푸른 녹음사이로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비친다. 화천군은 올해 평화의 댐위에 새롭게 '비목공원' 을 조성했다. 해마다 6월이면 비목공원에서는 그들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비목문화제' 가 열린다.

40여년전 교복을 입은 채 목총메고 낙동강 전선으로 떠났던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민통선안 비무장지대에는 전우가 만들어준 돌무덤에 묻힌 채 눈을 감은 군번없는 영령들의 비목이 남아있다.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비수구미는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온 하늘가' 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주말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듯 싶다.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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