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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작가상' 이례적 공동수상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신예 소설가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아니 신예를 발굴해야 하는 당신이라면 어떤 작품을 뽑을 것인가.

기본기인가, 새로움인가.

명징한 묘사력인가, 장르복합적 상상력인가.

이같은 고민을 반영이라도 하듯 민음사가 등단 10년 미만의 신인급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오늘의 작가상' 이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을 공동수상작으로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작품은 9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데뷔한 고은주 (32) 씨의 '아름다운 여름' 과 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한 우광훈 (30) 씨의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 생활' (민음사.7천원) .

'아름다운…' 은 지방도시 아나운서로 일하는 여성과 그를 짝사랑하면서 수시로 삶에 끼어들려 하는 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 학교졸업 후 2년간 진주KBS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소설쓰기를 꿈꿨던 작가 자신의 자아를 양분해 투영한 듯한 설정이다.

작가는 스토킹이라는 화제성 다분한 장치 위에다, 답답한 소도시에서 방송이라는 일회적.과시적 매체에 매여있는 주인공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를 명료한 문체로 구체화한다.

심사위원 박완서씨는 "튀거나 꼬이지 않고 반듯하게 안정된 문장과 비교적 확실한 작의 (作意)" 에 대한 칭찬과 함께 "넘치는 영상과 정보 속에서 헷갈리고 부대끼느라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우리 모두의 상실감과 허망감을 그려내는 솜씨가 결코 일회적인 작가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고 평했다.

반면 '플리머스…' 는 가상체험이 현실화된 23세기가 무대. 서부극 매니아인 주인공이 스리세븐건맨이라는 회사가 제공하는 가상의 서부공간 '플리머스' 로 6개월간의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다.

무대는 미래이지만, 작가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누적된 과거로서의 현재인 듯 보인다.

록뮤직.서부영화.팝아트 등 20세기 예술이 파편적인 콜라쥬로 대거 등장하고, 주인공은 최신형 총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정확함' 으로 상대를 꿰뚫는 '상상력의 건맨' 이 되기를 갈망한다.

작가는 대구의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지만, 작품에 반영된 것은 직업보다는 문화적 취향이다.

심사위원 이문열씨는 "발상의 상투성, 자연과학에의 과도한 의존, 얕고 단선적인 안목과 안개 피우기, 의식보다는 감각에 의존하기 등 사이버 문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처음부터 노출돼 있는 작품" 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군데 군데 힘주어 얽은 듯 느껴지는, 현대성에 대한 정색의 진술들은 거리의 사이버문학이 받고 있는 싸구려 혐의를 벗기에 넉넉해보인다" 고 손을 들어준다.

올해로 23회째인 '오늘의 작가상' 이 사상 처음 공동수상자를 내게 된 것은 이처럼 두 본심 심사위원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

"자리를 옮겨 술까지 권했지만, 원체 작품 성격이 달랐던 탓인지 장시간 논의끝에도 합의가 나지 않았다" 는 것이 민음사 박상순주간의 전언이다.

2천만원의 상금을 각 1천만원씩 나눠 주는 조건으로 공동수상자를 낸 두 심사위원은 두 당선작에 대한 책임도 나눠맡은 격이 됐다.

박완서씨가 "나의 믿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뿐" 이라고 심사평에 첨언한데 비해, 이문열씨는 "나의 소설독법에 대해 독자에게 가부를 묻고 싶다" 고 도전적인 표현을 썼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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