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는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결정된 정책이다. 수도권에서 중앙 행정 기능을 떼어내 충청권으로 옮기면 서울만 기형적으로 발달한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고, 수도권의 집값 안정과 교통난 해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 취지와 현실 사이엔 괴리가 크다는 주장도 많다.
◆건설사 계약 해지 속출=2007년 세종시의 아파트 용지 8만6000㎡를 분양받았던 A건설은 이달 초 한국토지공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이 기한인 2차 중도금 171억원을 안 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계약금(76억원)과 설계비 등 100억원 정도를 날릴 처지가 됐다. A사 관계자는 “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명확해질 때까지 납부 연기를 요청했던 것”이라며 “무턱대고 지었다가 도시가 텅 비어 미분양이 속출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했다.
세종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이곳에 집을 짓기로 했던 건설사들은 대부분 중도금 내기를 꺼리고 있다. 시범생활권 세 곳에 총 1만5000여 가구를 짓기로 하고 땅을 산 12개 건설사 중 벌써 A사를 포함해 두 곳이 중도금 미납으로 계약 해지를 당했다. 다른 한 곳은 이달 말까지 내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다. 2011년 하반기 입주란 애초 계획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만 기존 일정대로 ‘첫마을’ 7000가구를 짓고 있다.
◆‘50만 자족도시’ 성공할까=세종시는 정부청사 등 주요 시설이 들어설 예정 지역(73㎢)과 그 주변 지역(224㎢)을 합쳐 297㎢로 조성된다. 서울 면적(605㎢)의 절반이다. 건설에는 2030년까지 22조5000억원이 든다. 이 중 4분의 1인 5조4000억원을 이미 썼다. 아파트 건설 같은 민간 사업과 달리 정부청사·도로 등의 공공사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계획했던 기관을 모두 이전할 경우 현 정부 조직에 따른 대상은 9부 2처 2청을 비롯한 35개 기관이다. 지난해 말 1차로 국무총리실과 조세심판원이 쓸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이 착공됐다. 정부는 2012~2014년 단계적 입주에 차질이 없을 거란 입장이다.
문제는 이들 기관의 공무원이 모두 옮겨 와도 1만 명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더해도 1만2000명 정도다. 이들의 가족과 학교·상가·병원 등에서 일할 사람까지 합쳐도 5만~6만 명을 채우기 쉽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계획한 인구 50만 명의 10% 수준이다. 특히 이전 대상 부처의 공무원 중 가족과 함께 이주하겠다는 사람이 적어 이 수치도 낙관적이란 주장도 있다. 이러다 밤이나 주말이면 인적이 뚝 끊기는 ‘유령 도시’가 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도시 자족 기능도 문제가 있다. 예정 지역 73㎢ 가운데 산업·상업·업무용지는 3.1%에 불과하다. 정부청사와 출연연구기관 면적(0.7%)까지 더해도 서울의 ‘베드타운’인 분당(8.3%)·일산(7.8%)에도 크게 못 미친다. 반면 주택용지는 전체의 21%다. 다른 용도로 쓰기 힘든 녹지와 도로를 빼고 따지면 59%가 주택용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인구 늘리기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 비효율 우려=공무원들은 세종시가 원래 계획대로 건설되면 행정비용이 늘고 효율도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1990년 통일 후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 6개 부처만 남기고 나머지를 옛 동독의 베를린으로 옮긴 독일의 경우를 종종 거론한다. 독일 언론 ‘쥐드도이치’에 따르면 매년 본~베를린을 오가는 공문서만 751t이다. 행정 편의를 위해 두 도시에 설치된 이중사무소도 250곳에 이른다. 로이터 통신은 “많은 공무원이 고작 30분짜리 회의를 하려고 500㎞ 거리를 비행기로 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하대 이기우(법학) 교수는 “독일 현지에선 ‘통일 국가에 웬 분단 수도냐’는 구호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김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