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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상정보건진료소 소선녀 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방주야, 학교 가니까 재미 있니?" "응, 재미있어. " "그래?" "그런데 공부 시간은 하나도 재미없고, 쉬는 시간은 정말 재밌어. " "뭐라고?" 방주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래서 엄마로서 나도 방주처럼 1학년 학생이 되어 숙제를 같이 한다.

책가방을 열어보니 새 공책마다 여기저기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아니, 이게 뭐야? 공책에 낙서를 하다니. 깨끗이 지우지 못해?" 꾸중을 들으며 방주는 열심히 그림을 지운다.

호빵맨.로봇.사람 등등. "이 그림은 누구니?" "응, 나야. " "그래? 그런데 머리 위에 그린 동그라미는 뭐야?" "그건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 생각을 그리다니…. 그 동그라미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야단을 치다가 그만 웃음이 난다.

엉뚱한 방주, 무한하게 열려있는 방주의 상상나라! 그 속에 멋진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

무지개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운…. 그날 숙제는 가훈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은 우리집 가훈을 가리키며 읽어보라고 했다.

"수, 고, 하, 는, 사, 랑…. 무슨 말이야?" "음, 방주가 버스를 탔는데 의자에 앉았어. 그런데 어떤 할머니께서 버스에 타시는 거야. 그럼 방주는 어떻게 하겠어?"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할거야. " "그렇지. 그런데 할머니를 앉으시라고 하면, 방주는 서서 가야되니까 다리가 아프겠지? 그래도 참고 할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수고하는 사랑' 이야. " 잘 알아들었을까 못 미더운데 방주는 고개를 끄덕인다.

"방주야, 물 가져와. " 형 노아가 방바닥에 반쯤 누워 TV를 보면서 명령 (?

) 을 하자, 다른 때 같으면 '왜 나만 시켜' 하면서 불퉁거리는데, 오늘은 선뜻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온다.

그러면서 한마디. "형아, 우리집 가훈 때문이야. "

상정보건진료소 소선녀 소장

◇ 협찬 = ㈜한국문화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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