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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정원 정치도구 안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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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개각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느 각료보다 신임 국가정보원장의 임명에 대해 관심을 갖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가 '국정원 개혁' 의 기간이었다면 이제 국정원이 탈정치화된 '국가정보기관으로 착근' 토록 하겠다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의지가 과연 실현될 수 있겠느냐에 대한 관심이 첫째다.

다음으로는 대북 (對北) 정책을 둘러싼 예측불허의 복잡다단한 남.북.미 관계의 진행과정에서 차지하는 국정원의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 때문이다.

셋째로는 이제 국가의 안보와 국민생활의 안전문제는 군사안보영역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환경과 인권 등의 광범위 영역을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 (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으로 다뤄져야 할 상황에 이름에 따른 국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상승 때문이다.

정보화사회에서 모든 정부의 각 부처는 나름대로의 정보관련조직을 운용하면서 자료와 첩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류, 종합해 현안에 대한 결정과 집행과정에 활용한다.

그런데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역할과 기능이 유독 우리의 현대정치사에서 쟁점이 돼온 것은 '정보' 와 '정치권력' 을 분화시킬 수 없었던 정치체제적 성격과 국가리더들의 정당성 (legitimacy) 결핍 때문이었다.

정치권력이 국민적 위임과 지지에 기반둔 것일 때 '정보' 는 정부와 국가리더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에 불과하고, 국가정보기관은 이러한 정보가치를 생산.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정치권력의 정당성 결핍을 감시와 억압의 기제 (機制) 를 동원해 메우려 했고, 그 결과 '정보' 와 '정보기관' 은 국가보다 정치권력을 위한 도구적 수단이 돼왔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상황과 정보기구의 관료적 조직운영의 특수성 아래서 조직원 모두로 하여금 국가를 위하는 일과 부당한 정치권력을 위한 일 양자를 스스로 구분해줄 것을 기대했던 것은 무리였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국정수행의 으뜸덕목으로 삼고 있으며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국민대의에서 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정원은 순수 국가정보기구로 기능할 수 있는 정치환경적 여건은 마련됐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과정에서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느냐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정보원의 '프로페셔널리즘' 으로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고 신임 원장의 전문경력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여기에서 '프로페셔널리즘' 이란 국가정보기구 조직과 조직원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전문적 자기 일을 자아존립의 근거와 명예로 삼는 자세를 상정한다.

또한 정보화사회의 특성상 과거와 같은 파행의 반복은 언젠가는 공개될 것이고 결국은 민주정부와 지도자를 먹칠하리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앞으로 수개월간 국정원이 담당해야할 가장 어려운 과제는 정부의 대북정책결정.추진과 관련해 얼마나 훌륭한 대내외 정보가치를 생산하고 제공할 수 있느냐다.

국정원의 임무는 최고 결정자의 정책성향과 입맛에 맞게 정보를 수집.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결정이 국익에 최선이 되도록 보좌하는 일이다.

때문에 새로 거듭난 국정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체 조직의 기능고양만이 아니라 학술.언론.기타 전문분야를 망라한 사회부문과의 협력과 협업관계의 확대.강화를 통한 고품질의 정보를 생산하는 새로운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본다.

또한 국정원장은 '참모정치' 의 주역이 아니라 이를 제어하는 주역이 돼야 할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와 파행은 국가정보기구 책임자의 개인적인 야심과 왜곡된 충성심 때문에 '참모정치' 를 부채질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정보화.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에 따라 모든 나라는 점차 '포괄적 안보' 전략을 세워 대처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경우 최악의 국가경제위기를 이미 경험했고, 엄청난 사회적.환경적 문제점과 더불어 전략 차원의 결핍에 직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국가안보차원에서 다루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지난날 '안보제일주의' 를 활용한 권위주의체제의 관행과 그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도 이제 '포괄적 국가안보' 개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에게 이러한 상황을 이해시키고 종합적인 정부대책을 독려할 핵심부서는 현재 국정원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포괄적 안보'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는 국가리더의 의지와 리더십이 절대 필요하다.

이제 국정원이 거듭나서 기구존립에 대한 정당성을 제고시킨다면 이러한 나라 위한 일에 국민들도 동참할 것이다.

김동성 중앙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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