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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투자자 울리는 '사이버 증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인천에 사는 반재진 (38) 씨는 지난 13일 거래 증권사 (신흥증권) 의 컴퓨터망을 통해 온라인으로 주식매매를 하려다 낭패를 봤다. 갑자기 프로그램이 먹통이 되면서 매도주문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래점포 (중동지점)에 전화로 주문하려 했으나 통화량이 폭주하는 아침 동시호가 시간이라 연결도 되지 않았다. 潘씨는 허겁지겁 지점에 뛰어갔다.

그러나 이날 증시는 금리인상에 대한 우려감으로 30포인트 이상 급락했고 潘씨가 팔려던 종목은 이미 하한가 매도잔량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주문도 내보지 못한 채 고스란히 5백만원 이상 손해본 셈이다.

올들어 증권사간에 사이버 고객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인터넷 주식거래 수수료는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이용자수와 거래규모가 급속히 늘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전산운용 미숙.투자부족 등의 원인으로 인해 갖가지 전산장애를 일으켜 투자자들의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하이텔.천리안 등 PC통신의 주식투자 관련 사이트와 증권사의 이용자 게시판에는 최근 들어 전산장애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자들의 민원이 하루 평균 수백건씩 접수된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2실의 윤석희 검사담당관은 "이달 들어 10여건의 사이버거래 피해사례가 접수돼 조사 중이며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접수한 피해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 이라고 밝혔다.

◇ 유형별 피해사례 = 장중 거래회사의 컴퓨터가 장애를 일으켜 제 시간에 주문을 내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가장 많다.

증권거래소의 증권전산이 장애를 일으키면 주식시장의 거래가 전체적으로 지연될 뿐이지만 개별 증권사가 전산고장을 내면 그 시간대에 해당 회사와 거래하는 사이버 투자자들만 손해를 본다.

지난 19일 대신증권이 장중 두시간씩이나 전산장애를 일으켜 투자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다. 온라인 주문처리가 지연되는 사이 주식값이 바뀌면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중앙대 장경천 교수팀이 지난 4월말 현재 사이버 서비스를 제공 중인 23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전과 오후 동시호가 시간대의 경우 전산처리속도가 평소보다 최고 4배 가량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매체결이 이중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절반 가량이 그런 사례들이다.

◇ 전산장애 요인과 책임공방 = 우선 증권사의 컴퓨터 용량이 작다. 사이버 고객수는 급증했지만 상당수 증권사들이 비용문제로 용량을 늘리지 않았다.

전산운영 미숙으로 일어나는 사고도 있다. 지난달 20일 투자자 이용우씨는 신흥증권의 사이버거래 프로그램인 '넷스탁 3.0' 을 복사 (다운로드) 하다가 치명적인 체르노빌 (CIH)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회사측은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CIH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고 시인했다.

전산장애로 인한 피해는 입증책임이 대부분의 경우 이용자들에게 있어 각별한 조심이 필요하다.

사이버 거래는 수수료가 싼 만큼 서비스의 질도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 선진국 사례 = 인터넷 주식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 전체 주식거래 대금의 약 30%를 차지한다. 최근 미국도 인터넷 관련 주식투자 사고로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달 세계적인 사이버 주식거래 전문업체인 미국의 E - 트레이드는 장중 시스템 다운 사고를 일으켜 투자자들로부터 집단 제소를 당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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