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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걸으며 스스로 치유하는 순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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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김지영 지음, 책세상
311쪽, 1만3000원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에는 일본판 ‘산티아고’로 불리는 오핸로 순례길이 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려로 추앙받는 코보 대사가 제창한 길이다. 시코쿠의 88개 사찰을 걸어서 순례하는, 거리만 1400㎞에 이르는 이 길은 시속 5㎞로 걷는 사람이 하루 6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도 한 달 반이 걸리는 만만찮은 거리다.

이 고행의 길에 사람들은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나선다. 남자에게 차여서, 회사에서 짤려서, 친구가 자살해서, 자식이 죽어서 등. “고독은 힘들지만 자신을 오롯이 혼자 내버려둬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살다 보니 있는 것 같다”는 지은이의 말대로 순례자들은 홀로 걸으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저자는 “길 위에서 내가 내 꿈과 씨름했던 것처럼 그들은 모두 각자의 무언가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쓰라린 상처와 어깨에 걸머진 짐들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서로가 안됐고, 서로가 불쌍했다. 우리는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작은 기적을 나눴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은이에 오핸로 순롓길은? 영화판에서 맛본 좌절과 우울을 떨쳐내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순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해외 영화제의 초청도 받았다. 책의 말미에는 무료 숙박소 등 순례자를 위한 정보도 담겼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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