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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가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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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관객 800만 동원을 앞둔 영화 ‘국가대표’에는 밥(하정우)이라는 재미동포가 나온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아예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지만 헌태(밥)는 애국가 1절 가사도 모른다. 자연히 ‘양키 새끼’라며 욕하는 동료와 갈등을 빚는다.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재일동포 출신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1961년 1월 1일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 처음 국가대표로 뽑혔다. 당시 나이 19세. 59년 8월 7일 재일동포 학생야구선수단의 일원으로 한국 땅을 밟은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최근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집 『꼴찌를 일등으로』에 따르면 가네바야시 세이콘(金林星根)으로 불리던 소년은 한국에 와서야 자기 이름이 ‘김성근’이라는 걸 알았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동포 여학생의 미소는 따뜻했다. 처음 먹어 보는 불고기 맛에 반했고 영화 ‘비극은 없다’의 주인공 김지미에게 매료됐다. 동료 선수의 친척들이 숙소로 찾아오면 날마다 눈물바다가 펼쳐졌다. 뭉클했다.

물론 좋지만은 않았다. 경기 도중 교포 투수의 공이 경남고 4번 타자 박영길의 머리를 맞히자 관중은 일제히 ‘쪽발이 물러가라’며 야유를 보냈다. “일본에서 조센진이라고 차별받고 사는 것도 서러운데, 재일동포 선수단을 구성하는 일도 얼마나 어려운데, 쪽발이라니….” 국가대표가 된 뒤에도 ‘쪽발이’라는 수군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일민족’의 순혈주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였던 재미동포 출신 박재범은 4년 전 인터넷에 남긴 몇 마디 불평 때문에 하루아침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시애틀로 돌아가는 신세가 됐다. ‘군대도 안 가는 교포’라는 이유가 그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북돋웠다. “한국에서 돈만 벌어 돌아갈 거라면 지금 당장 꺼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혹시 한국식 생활 방식과 예절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4년 전의 그를 몰아붙인 결과가 ‘난 한국인들이 싫어(I hate Koreans)’라는 불만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을까. 그 실수 하나로 등을 떠밀듯 보낸 조국은 과연 그에게 어떤 나라로 기억될까. 그를 바라보는 다른 동포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은 까다롭고 차갑기만 한 나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2009년 현재 재외 한인의 수는 682만 명에 달한다.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