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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나룻·다리털 싫어" 남자들이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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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자코치에게 수영강습을 받는 최종임 (35.서울노원구 상계동.주부) 씨는 의아했다. 우연히 본 수영코치의 겨드랑이에 털이 없었던 것. 하도 이상해 다른 남자코치의 겨드랑이도 훔쳐 (?) 봤으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김인호 (19.서울강남구 압구정동) 군은 지난 주말에 다리에 있는 털을 면도기로 깎아 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려니 굵고 긴 털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

남자들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털 없는 매끈한 다리를 찾는가 하면 고운 얼굴피부를 위해 마사지도 한다. 머리를 길게 길러 머리띠를 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미용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장보기가 아내나 어머니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옛날 얘기. 사이버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속옷 하나도 자신이 골라 산다. 휴일이면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요리 솜씨를 뽐내는 가장도 적지 않다.

서울 양재동 '차&박 피부과' 의 경우 이용객의 30%가량이 남자다. 이 병원 차미경 (36) 원장은 "남자들은 대부분 짙은 턱수염과 가슴의 털 때문에 찾아온다" 며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깔끔한 남성상을 바라는 추세" 라고 말했다.

서울 돈암동에서 '고운세상 피부과' 를 운영하는 안건영 (34) 원장도 "10대 남성들은 주변에 혐오감을 준다며 다리털을, 20~30대는 면도하기 귀찮다며 짙은 수염을, 40대는 이미지에 나쁘다며 이마 부위의 털 제거를 주로 요구한다" 고 전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윤승우 (38) 씨는 긴 머리를 묶고 사무실에 출근한다. 집에서는 자신의 직접 구입한 헤어 밴드를 한다. 윤씨는 "긴 머리가 좋아 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 끈과 헤어 밴드를 사용하게 됐다" 고 설명한다.

서울시내 미용실이나 피부관리실에는 남성전용 마사지룸을 운영하는 곳이 부쩍 늘고 있다. 역삼동에 있는 한 피부미용실에는 얼굴에 커진 모공이나 여드름 자국을 없애려는 남성들이 하루 2~3명 꼴로 찾아오고 있다.

지난 해 결혼한 새댁 김유정 (28.서울송파구 가락동) 씨는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종종 얼굴 마사지를 해준다.

"신혼 초 장난삼아 시작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더 얼굴 마사지를 원해 귀찮을 때도 있다" 고 들려준다.

명동에 있는 화장품전문점 '미니몰' 의 안을숙 (42) 차장도 "남성용 선물로 스킨이나 로션 뿐 아니라 머드팩이나 코팩도 잘 나간다" 고 귀띔했다.

남성들이 슈퍼마켓에서 생선을 고르는 것은 이미 지난 얘기. '장보기' 남성 인구는 최근에는 사이버공간인 인터넷쇼핑몰이나 케이블TV 홈쇼핑 채널로까지 영역을 확대, 위세가 대단하다.

케이블TV 채널45 LG홈쇼핑이 분석한 고객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17%에 불과하던 남성비율이 올들어 40%로 치솟았다. 남자들 중에도 40대 층이 42%로 가장 많다.

어린이 완구전문 인터넷 쇼핑몰인 지토이즈 (G - Toys) 이미숙 사장도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항해하다가 장난감을 주문하는 남자들이 많다" 며 "남성들이 컴퓨터 활용에 더 익숙해 쉬 접근하는데다 한두 번 쇼핑을 하다보면 쇼핑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이 사이트의 경우 서울보다 지방에 있는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59) 교수는 "이런 남성들의 변화를 여성화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며 "성 (性) 의 구분없이 개개인의 성격차이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 김희수 (32) 연구원도 "사회구조가 바뀌면 남성다움.여성다움의 개념도 달라지게 마련" 이라며 "엄격했던 성 모델이 이제 점차 좁혀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현상" 이라고 말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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