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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를 찾아서] 8. 게스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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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2년 전 추운 겨울날 대학로의 '충돌 소극장' .개그맨 겸 가수인 그룹 컬트트리플 공연이 한창이었다. 1부 순서가 끝나자 1백50㎝가 겨우 넘어보이는 귀여운 아가씨가 무대로 올랐다.

"게스트로 서게 된 리나 박이에요. 저를 모르시는 분이 많겠지만 노래 한번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한쪽 팔로 허공을 가르는 독특한 제스처와 함께 그녀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노래를 불렀고 전율스런 가창력에 빠져든 청중은 앵콜을 연발했다.

이후 라이브 무대에서 60여 차례나 게스트를 선 그녀는 인기가 높아지자 '박정현' 으로 이름을 바꿔 데뷔음반을 냈다. 지난 주말 역시 대학로의 연강홀. 신보 '폭풍' 으로 인기몰이 중인 박상민 콘서트. 1회 공연에 무려 6팀의 게스트가 출연했다. 김정민 같은 가수, 남희석 같은 개그맨들이 교대로 나와 청중을 즐겁게 했다.

"전 게스트로 큰 가수예요. 무명시절 인기가수들 무대에 게스트로 나와 지명도를 넓혔죠. 신인 후배들을 가능한 많이 제 무대에 세워 도움을 주고싶어요. " 박상민의 말이다.

게스트. 한국 라이브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다. 공연 중간에 대략 두명씩 초대가수가 나와 각각 두 곡씩 부르고 공연에 대한 덕담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게스트 제도가 없으며 미국에는 '오프닝' 이라 해서 메인무대 시작 전 신인가수 서너명이 나오는 형태가 보통이다.

가수들의 '품앗이' 형태인 게스트는 한국의 정 문화와 상통한다.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는 개런티를 받지않는 대신 본인이 콘서트를 열 때 상대방을 게스트로 초청한다. 그러다보니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강하다.

박상민.김종서.이은미.이승철.이승환 등 라이브스타나 김혜림처럼 인간관계 좋은 가수는 풍부한 게스트출연진을 자랑한다. 서로 밀어주는 '게스트 커플' 도 많다.

김경호와 최재훈은 상대방 공연에 반드시 출연하며 유리상자 - 박학기, 박상민 - 김정민, 이은미 - 서우영도 알아주는 게스트 커플. 반면 인기도 인맥도 없는 신인가수들은 라이브스타들의 무대에 게스트로 서거나 자신의 콘서트에 이들을 초청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

게스트는 공연에서 또다른 인기가수의 라이브를 즐길 수 있고 미지의 신인을 감상하는 기회란 점에서 공연의 액센트 구실을 톡톡히 한다.

라이브극장 주봉석씨는 "오늘 공연 게스트는 누구냐" 고 묻는 관객전화가 매회 20건씩은 온다고 전한다. 아예 게스트를 공연의 핵심으로 삼은 '주객전도' 형 콘서트도 등장했다. 지난주 대학로에서 1주간 펼쳐졌던 박경림 토크콘서트. 주인공 박경림은 진행만 맡고 노래는 김현철.이소라.김건모.O.P.P.A 등 게스트 가수들이 불렀다.

그러나 게스트는 미국의 오프닝처럼 일반적으론 공연하는 가수의 주도권을 해치지 않고 흥을 돋우는 수준에 그쳐야한다는 지적 또한 많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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