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中企 전성시대…은행 "돈써달라"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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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알짜로 소문난 D전자는 얼마전 30억원을 꾸면서 거래은행 말고도 두어군데 다른 은행 지점을 골라 금리 '입찰' 을 붙였다. 서로 "우리 돈 써달라" 고 달려드는 바람에 연리 7.5%의 파격 조건을 제시한 은행에 낙착됐다.

경쟁에서 탈락한 기존 거래은행 관계자는 "정말 세상이 달라졌다" 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해 말에는 유망 벤처기업 P사를 협력업체로 끌어 들이려고 몇몇 종합상사들이 치열한 암투를 벌인 일은 무역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우량 중소기업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은행들은 '신용 있는 중소기업' 고객 찾기에 혈안이 돼있고, 대기업들도 '우량업체' 에게는 갖가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협력관계로 유도하고 있다.

정부도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각종 금융.세제 지원을 '우량 중기' 에 우선 지원하고 있으며, 세무조사에서도 유보 등의 혜택이 따른다.

박삼규 (朴三圭)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여유자금 굴릴 데를 찾고 있는 금융권, 무거운 몸집 때문에 순발력을 보강해야 하는 대기업, 중기 진흥책을 전례없는 강도로 추진하는 정부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알짜 중기의 성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고 말했다.

◇ 달라진 대우 = 탄탄한 중견 기업이 많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강남대로 일대나 인천 남동, 경기 시화.반월 등 수도권 공단 인근 은행 지점 직원들은 자리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다.

업체를 일일이 방문, 예금은 기본이고 신용장 개설.외국환 등의 업무를 봐주고 있다.

신한은행 장명기 역삼지점장은 "지점장이 사장 면담을 요청해도 성사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현대.삼성.대우 등 종합상사들 역시 중기 전담부서를 확충, 본격적인 우량 중기 '사냥' 에 나섰다.

㈜대우 노병인 팀장은 "중소기업청.중소기업진흥공단은 물론 전국 각지 지자체 중기담당 부서를 누비며 우량 협력업체를 하나라도 더 발굴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 말했다.

◇ 어떤 회사들인가 = 은행들은 저마다 1천~1천5백개의 우량 중기 파일을 갖고 있다. 메디슨. 진웅. 한미약품. 귀뚜라미보일러. 삼천리제약. 한섬. 한국리레이. 승일제관 같은 이름들은 거의 모든 파일에 등장하는 낯익은 곳.

한국코카콜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코리아. 오스람 코리아. 한국미쓰이물산 등도 은행들이 눈독 들이는 외국계 기업들. 은행이 '괜찮다' 고 보는 중기는 자산 70억원 이상의 외부감사 대상법인 중 ▶부채비율 3백% ▶매출 대비 금융비용이 5%를 밑도는 곳들이 주종을 이룬다. 현재 2천개 가량으로 추산된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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