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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3개월 앞둔 교장 뇌출혈 뇌사…안구.시신기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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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퇴직을 3개월 앞둔 현직 초등학교 교장이 스승의 날을 사흘 앞둔 12일 안구.시신을 의대 실습용으로 기증하고 교육자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로 춘천 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던 평창 다수초등학교 박한수 (朴漢壽.64) 교장이 숨진 것은 12일 오전 4시. 장남 영선 (榮善.40) 씨 등 유가족은 평소 장기기증을 소원하던 고인의 뜻에 따라 이날 시신을 한림대의대에 실습용으로 기증했고 안구는 柳모 (74) 씨에게 이식됐다.

자신의 퇴임과 함께 폐교되는 다수초등학교 학생들의 앞날을 걱정하던 朴교장이 뇌출혈 증세를 보인 것은 지난 1일. 유가족에 의해 이날 밤 춘천으로 후송됐지만 수술을 위한 정밀검사 도중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모든 것을 학생들 위주로 생각하고 일하는 자세로 43년간 교직에 몸바쳐온 朴교장의 평소 교육철학은 철저한 실용성. 이때문에 학생을 만날 때마다 "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21세기에는 무엇이든 한가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 며 자신의 재주를 키울 것을 당부하곤 했고 지난 97년 3월 다수초등학교 부임과 동시에 교무실 한 귀퉁이로 자신의 책상을 옮기고 교장실 예산으로 실습용 컴퓨터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 학교 5학년 김영범 (金榮梵.11) 군은 "워낙 자상하고 인자하셔서 교장선생님이라기보다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다" 며 "교장선생님이 가르치신 대로 훌륭하게 자라 은혜에 보답하겠다" 고 다짐했다.

유가족들도 "평소 남에게 신세지기를 죽기보다 싫어 하시면서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늘 자식보다 앞세우셨다" 며 "끝까지 뜻있는 일을 하고 가셔서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한편 朴교장의 영결식은 14일 오전 10시 춘천 호반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춘천 =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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